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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Nov 03. 2022

오늘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는 나에게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를 읽으며 (1)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선택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았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기만 하면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게 된 이유를 따져보자면,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겠노라 하는 극심한 배려심과 더불어 너무 신중한 탓이었다. 배려심이야 상대방과 의견을 조율하며 정도를 결정하면 됐지만, 나의 선택이 늘 성공적이길 바라는 완벽주의 기질은 모든 일을 '성공과 실패'라는 틀을 씌워놓고 보게 했다.


신중했기 때문에 실수가 적었고, 실패할 확률이 낮은 일들을 골라한 나에겐 성공 열매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 안에는 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지독한 안전 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매사 결정이 힘든 건 아니었다. 분명히 세워져 있는 기준을 따라 자동적인 선택을 척척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메뉴가 많은 식당에 가면 너무 골치가 아팠다. 선택지가 많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선택지가 적으면 결정이 쉬웠던가?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선택' 자체가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신중한 여자가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을 가진 남자와 만나게 되었다.


1년 반을 짝사랑으로 마음앓이하던 이 남자는 때가 이르렀을 때(?) '오늘 고백을 해야 한다'는 판단 후 이를 과감히 실행으로 옮겼다. 그를 오래 지켜봐 온 여자는 고백을 받은 후 또 깊이 고민하고 신중히 판단하여 그의 손을 잡았더랬지. 그 남자가 바로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남편이다. 여기까지 와서 보니, '어떻게 이렇게 균형 잡힌(?) 만남이 있을까!' 하며 감사가 절로 나온다.


남편은 연애 시절부터 메뉴판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늘 기다려줬다. 남편 덕분에 끝내 메뉴를 선택하고야 마는 기쁨과 새로운 메뉴를 과감하게 선택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말이다.




며칠 전, 서점에 갔을 때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 한 권을 샀다. 메이지 대학교 교수이자 언어학 박사인 홋타 슈고가 쓴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라는 책이다. 그는 '합리적인 선택'에 대한 장에서 네덜란드 네이메헌 라드바우드대의 심리학자인 압 데이크스테르하위스 연구진의 실험 내용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중고차와 축구를 이용한 두 번의 실험 모두 단시간에 결정한 그룹의 정답률이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단시간에 결정해야 하는 그룹은 생각할 시간이 짧은 만큼 주어진 정보에 우선순위를 정해 합리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잘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잊는) 습관은 불필요한 사고를 없애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 생각의 시간이 길다고 무조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때론 시간이 넉넉히 필요한 사안들도 있지만). 나는 나의 신중함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지만, '선택'과 '결정'이라는 목표 지점까지 난 생각의 길을 단축시켜야겠다는 의향은 가득하다. 선택이 필요한 모든 일들의 범주는 제각각이겠지만, 내게 주어지는 정보에 우선순위를 정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처리 과정은 하루아침에 능숙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내 삶의 우선순위를 더욱더 분명하게 할 것과 변하지 않는 진리를 마음판에 잘 새겨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우선순위와 기준을 따라 분별하고 판단하는 훈련에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머뭇거리지 않는 실천을 더하고 말이다.


나의 필명은 '생각많은얼룩말'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떻게 사고(思考)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의 내가 그저 생각이 많기만 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생각의 미로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남편의 퇴근 시간이 다다르기까지 저녁식사 메뉴를 정하지 않은 것은 빠르고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나의 큰 그림이라고 설명하며.



P.S. 오늘 남편이 퇴근길에 떡볶이와 오뎅탕을 저녁식사거리로 들고 왔다. 이 실행력 좋은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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