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원하던 공무원이 되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나요?
직업을 선택할때 자기만의 기준이 있을것이다. 돈, 명예, 워라밸 등등. 조금 특이하지만 나는 '나의 일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과 가치'에 초점을 두었다. 내가 일반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일하면 사장님이 돈을 많이 벌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인 내가 열심히 일하면 공익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놀랍게도 나는 사명감을 갖고 공무원을 꿈꿨었다.
어렸을 때 우리집은 정부의 지원을 받을정도로 가난했다.
대학을 졸업할때 쯤 나는 공무원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랐던 내가, 공무원이 되어 생산해낸 공익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다른사람에게 편안하고 이로운 사람이 돼라고 지어주신 내 이름처럼 편안하고 이로운 공무원이 되고싶었다. 실제로 면접에서 자기소개때도 이렇게 말했다.
시민을 위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늘 친절한 편이니 '공'무원이 되어 '공'익을 생산해내는 일을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사회적 가치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준비할 때도 너무나 간절했다. 시험이 다가오면 합격에 대한 부담감에 책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공부했었다. 그와중에도 눈물에 필기가 지워질까 휴지로 조심스레 닦아내던 내모습이 지금생각하면 그렇게 짠할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행정직공무원이 무슨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시험준비를 할 때 한번 구청 홈페이지에서 담당업무룰 훑어본 적이 있는데, 기획, 감사, 허가, 과태료 등 도무지 감을잡을 수 없는 말들 뿐이었다. 합격이나 하고 생각하자, 공부나 하자 생각하며 꺼버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슨일을 하게 될 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언제나 에이스였는데, 막상 입사를 해보니 공무원은 친절함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양하고 복잡한 행정업무에 각종 보고서, 의회, 정보공개, 등 각종 법정업무를 처리하는데 친절함이 빛을 발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민원대에서 업무를 볼때도 친절은 내 태도일뿐 그것만으로 업무를 처리할 순 없었다. 각종 법령과 시스템, 서류를 검토하고 발급해주는것이 내 일이다. 친절은 처음 마주할때와 돌아가실때 인사하는 그 찰나에만 사용된달까.
생각보다 공무원이 '민원을 위해 봉사하는' 느낌의 업무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주어진 업무를 하면서 기본적으로 한분에게라도 더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마인드가 있는사람과 없는사람은 업무스타일이 확연히 차이나곤 한다.
하지만, 특히 구청을 떠나 시청에 전입 온 이후 내가 무엇을 위해 이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빡빡한 상사에게 보고할 보고서를 생산하기 위해 시간을 쓰고 법정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이 너무나 숨막히고 적성에 맞지않는다.
'공무원이 되면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 어쩌면 내가 세웠던 명제는 같은 한 글자를 사용하는데서 비롯된 오류가 아닐까.
보고를 위한 간이 보고서와 같이 갖은 페이퍼를 생산해 내는 일이 진정으로 공익을 위하는게 맞는걸까? 나는 처음 생각한대로 편안하고 이로운 공무원인가?
요즘의 나는 적성에 맞지않는 일을 견뎌내느라 처음 시험을 준비할때의 사명감 조차 점점 퇴색하는것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직업을 택할때 생각했던 기준의 오류를 체감하고 부끄러워졌다. 공무원으로서 내가 하는 이러한 일이 공익을 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면 이세상의 모든 일은 다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대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한다면 그것 자체로 공익이 아닐까?
물론 시에서는 올바른 정책결정을 위해서는 기본데이터가 필요하고, 그를위한 보고서는 필수적임을 안다. 하지만.. 앉아서 하루종일 보고용 페이퍼를 만드는 나보다 다른 직업의 일들이 훨씬 공익을 위하는 것이아닐까? 공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직업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는 요즘이다.
나는 적성에 맞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싶은데, 둘다 아닌 것 같아 괴롭다.
작년부터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고민을 말하면 사람들은 대답한다. 세상에 적성에 맞아서 일하는 사람이 어디있느냐고. 공무원도 못견뎌내면 다른 것도 못할거라고. 잘리지않는 직장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고민만 하던 사이에 시간이흘러 무언가를 선택하기에 너무 늦지는 않은, 그렇다고 이르지도 않은 32살이되었다. 이제는 진짜로 선택해야할 때라는 것을 직감한다. MZ세대라고 하나의 명사로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M과 Z는 조금 결이 다르다. 특히 나와 같이 애매한 나이로 몇년간 다닌 직장에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앞으로 계속 이 길을 나아갈 수 있을지 가장많이 고민하는 부류가 요즘의 M세대가 아닐까. 선택의 기로에 놓인 모든 M동지들과 나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