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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라 Jul 17. 2021

이 작가 그동안 어디 갔었어?

일상 이야기 (3)

어제는 회사에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7월 말까지가 마감이었는데

뜬금없이  대표님이 직접 연락이 왔다.

2부 대본 언제 되냐... 써놓은 거 들고 회사에 들어오라는 연락

3년 가까이 이 회사와 일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4부 대본을 이 달 말까지 써서 가야지 하고 맘먹었다.

물론 그 시간은 물리적으로 작업하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그랬다. 두 달 동안 새 기획안과 대본 초고 4개를 가지고 가야지.

그렇게 이 악물고 작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본 두 개라도 보내달라는 대표님의 전화.


보통 작가가 마감날을 정하고, 대본이 들어가고 다 읽고 나면 회의 날짜를 잡는데

갑자기 마감 날짜를 서둘러 달라는 말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 다녔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성수동에 위치한 회사.

꽤 근사한 건물에 있는 우리 회사.

대표님의 인품도 좋고,  회사의 컨디션도 좋고 다 좋으나

나는 회사 들어가기 전 울렁증이 있다.

이상하게 회의가 안 되는 회사였다.

다른 영화사나, 연극 제작사들과는 정말 편하게 회의를 하는데. 이 놈의 드라마 제작사와는

지난 시간 동안 한 번도 재미있었던 기억이 없다.


물론 재미있다는 표현은 달리 해석이 될 수 있겠지만, 치열하게 싸워도 재미가 있다.

영화사의 감독님이나 피디님들과 회의를 할 때는 항상 피 튀기듯 싸운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재연까지 서슴지 않는다.

감독님도 연기를 하고, 피디님도 연기를 하고, 나도 연기를 한다.


대사가 입에 안 붙을 때는 우리가 직접 연기를 하고, 그 호흡을 전달한다.

"이 작가 이 대사 너무 길고 재미없는데?"

라는 말이 나오면, 그 대사를 내가 직접 친다.

"뭐가 왜?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대산데! 왜!!!! "


그러나 우리 회사랑 드라마 회의를 하면, 그냥 야단만 맞고 오는 것 같았다.

회의할 때마다 이상한 디테일에서 태클이 들어와서 그 이야기하다 보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회의하는 사람들 마다 보는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그 들의 관계 안에서도 상하관계가 있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하기도 한다.

아님,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과하게 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늘.... 회사에 가기 전에 마음을 다스렸다.

뭐 어떨 때는 대본을 확 뒤집어쓰기도 했으나, 대표님이 그때 한 말이 더 충격이었다.

"이 작가, 이 거 이 작가가 쓴 대본 맞아요?"


지난 2년 6개월, 내게 마감날은 늘 고역이었고 내게 회의는 늘 도살장 같았다.

어떤 날에는 계약금을 뱉어 내고 당당하게 나가는 다른 작가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나는 돌려줄 계약금도 없는데.... 그걸 지원해주는 남편도 없고.... 대출을 위한 신용도 없는데.....


그런데, 이번 작업은 달랐다.

이번 작업은 회사에서 재미없다고 했던 소재를 내가 우겨서 했다.

물론 우길 때는 이유가 있었다. 불과 칠 개월 전부터 회사의 권유로 하게 된 웹툰과 웹소설 작업이

엎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 기회를 잡아, 나는 회사에 당당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할게요. 두 달만 시간 주세요."


그렇게 시작한 작업인데, 갑자기 회사에서 날 호출한다.

만 가지 생각을 하며 회사로 갔는데, 결론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이 작가, 그동안 어디 갔었어? 왜 이제 돌아온 거야~ 이제야 옛날의 이 작가로 돌아왔네"


거기다가 기획안 다 받아놓고 나서, 자기네 회사의 작가랑 하겠다고 말한 공동제작사에서도 연락이 왔단다.

"몇 명의 작가랑 작업했는데  그 회사에서 이 작가 기획안이 제일 좋았다고 다시 작업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우리 집 애가 나가서 맞고 오면 화나는데. 그래도 이 작가 실력 좋다고 말하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괘씸은 한데 기분은 좋았어."

대표님이 기분 좋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가열하게 회의를 했다.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이렇게 재미있게 회의를 한 것은.


내가 염려했던 대목의 의견을 여쭈었을대, 대표님은 말씀하셨다.

"어~ 그 씬 그 부분 좋았어. 나 읽으면서 그거 괜찮았는데~"

"사실 그게 원래 설정과 다르게 대사를 쓰면서 바꾼 설정이라서.... 씬때문에 설정을 바꾸었어요.

근데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

라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데, 대표님이 들으시며 의견을 내신다.

처음이었다. 티키타카가 되는 회의가......


회의를 끝마치고 난 뒤, 내게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확신과 책임감.

어쩌면 나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써야 할 것 같은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닌지....

확신도 없었고 책임감도 없었던 글로 회사를 괴롭혔던 것은 아닌지.....


몇 번의 엎어짐 끝에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내가 선택했던 것은, 까일 때 까일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딱 그거였다.


두 시간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급격하게 크로켓이 먹고 싶었다.

크로켓 두 개를 쌍문역 도너스 집에서 구매를 하고 

주차를 하는 동안 그 크로켓을 다 먹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왔는데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지금 이 시간이다.

톡으로 후배가 연락이 왔다.

[언니. 다음회는 언제 올려 주 실 거예요?]


오늘, 글은 객관적으로 재미없는 글이다.

나의 개인적인 회의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 나의 회의는 지난 2년 6개월의 회의 중 가장 재미있는 회의였다.


내가 재미있지 않으면, 그 누가 내 글을 재미있게 보겠는가!

뭔가 처음 글을 썼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함바집을 하면서도 밤새 대본을 쓰던 그 시절로


내일부터 나는 또 재미있는 작업을 이어 나가려고 한다.

지금은 나만 재미있자. 나부터 재미있자.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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