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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라 Jul 12. 2021

배가 아플 때는 망치로 머리를 쳐라!

일상 이야기 (2)

어제부터 내게 적(赤)이 쳐들어왔다.

이 놈은 내 나이 13살 때부터 아직까지 매달 한 번씩 아주 규칙적으로 쳐들어온다.

아니. 정정한다.

작년 말부터 규칙적이지 않았다.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

라는 질문에 나는 늘 당당하게 말했다.

"생리통이야!"


빙 둘러말하지 않는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마법 데이, 대자연의 재앙, 그날이야, 뭐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냥. 생리통!

이 간단한 말을 하는 게 참 머쓱할지라도 그냥 그게 제일 편하다.


나는 극성 빈혈을 가지고 있다.

보통 헤모그레빈 수치라고 해야 하나. 철분 수치라고 해야 하나. 병원에서 빈혈 검사를 받으면

성인 남자 12~13. 성인 여자 11~12라고 하는 그 수치에서 나는 늘 5~6 정도이다.

즉 수혈을 받아야 하는 수치이다.

이 큰 몸뚱이에 피를 어디다가 숨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의 생리통은 유별나다.

더군다나 나처럼 지병으로 인해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하혈이 멎지 않아

응급실로 쫓아가는 경우도 더러 있고, 이미 몇 번의 수혈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때, 의사는 나에게 미래나 루프를 권했으나 그때 시술한 미래나 루프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나는 남들과 달리 폐경을 기다리는 여자가 되었다.


남들은 아마씨나 석류를 먹으며 폐경의 시기를 늦추고 있다면, 나는 빨리 폐경이 와서 이 지긋지긋한 통증과 극심한 빈혈의 고통을 멈추고 싶었다.

정말이지 매달 이틀은 꼼짝없이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은 듯이 숨만 쉬고 있는다.

그 주간 일주일은 웬만하면 약속도 잡지 않고 일도 하지 못할 정도이다.

이 고통을 알겠는가!

이 유별난 생리통의 고통은 마감 전쟁에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가까운 피디들과 감독들이 저 생리통이에요.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릴 정도이고

어딘가 펜션에 글 쓰러 갈 때면 그 날짜가 보름이 넘는다면, 꼭 일자형 기저귀 패드 대형을 들고 간다.

드라마 디어 마이 라이프에서 요실금이 있는 노인들이 여행 갈 때 기저귀를 들고 가는 걸 보고 

나는 정말이지 그 작품의 작가를 존경했다.

내가 딱 그런 꼴이 이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볼 거 없이 내 트렁크에는 항상 그 기저귀가 비상용으로 있다.


이 불편한 이야기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하다니. 역시 아줌마의 힘인가?

아무튼, 나는 시체처럼 소파에 누워서 오늘 하루가 가길 기다렸는데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아... 이럴 때 굶어줘야지 살이 쫙쫙 빠질 텐데..... 그러나 나는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주방으로 갔는데

이게 무슨 일?  주방 바닥에 한강이다.

카펫이 젖어있었고, 물이 고였다. 음..... 문제는 바로 김치 냉장고였다.

김치 냉장고 냉동칸이 작동되지 않는 것이었다.


돈 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선,  수건으로 물을 훔쳐내고 서랍 칸이 튀어나와서 문이 덜 닫혔을 것 같아 대충 정리하고는 문을 닫았다.

갑자기 아픈 배의 통증이 사라졌다.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역시 배가 아플 때는 망치로 머리를 치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봤다.

김치냉장고가 고장 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김치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물을 모두 버리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김치 냉장고를 버리기로 맘먹었다.

그래~ 냉장고가 없어지면 물건을 재어두는 쇼핑도 필요 없을 것이고 좁은 주방을 넓게 쓰겠지

미니멀 라이프를 이때 실천해보자!


이 얼마나 긍정적인 생각인가!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냉장고가 커야 한다는 나의 소신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걸레질 몇 번 하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나니 나의 고질병 생리통의 통증도 점차 잊혀갔다.

두통이 생리통을 이겼다.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나니 슬슬 또 생리통이 도지기 시작했고

나는 얼마 전에 해외 직구한 진통제를 찾아서 한 알 입에 털어 넣었다.


누군가는 폐경이 늦게 찾아오길 기다리고

누군가는 빨리 폐경이 되길 기다리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내가 딸 단비를 낳고, 그 아이가 딸이라서 울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너도 나처럼 매달 생리통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구나!

요즘도 그날만 되면 묻는다.

"엄마도 생리통 심해?"

"응. 너도 나 닮았는 나 보네."

"그래도 닮은데 한 군데는 있어서 다행이네. 남들은 나 엄마 안 닮았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야~ 너 나랑 똑같이 생겼어~"

"무슨 소리야. 엄마. 나 엄마 안 닮았어~"


내가 낳았다고 하기엔 너무 예쁜 딸아이.

그 아이의 이런 말이 살짝 미워져... 기어코 악담을 하는 나


"야.. 조심해. 너도 나처럼 늙을걸~"


아무튼 어떤 후배의 말처럼

"누나는 아직 가임기 여성이야~ 자신감을 가져~ 매달 아픔을 즐기라고!"


즐기기에는 너무 큰 복통

복통을 이기는 것은 두통이었다.

머리 아픈 일이 생기면 청소를 하듯이

글을 쓰다가도 글이 힘들어지면 요리를 하듯이

우리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적당히 배분해야지 그 고통들을 견딜 수 있는가 보다.


그나저나 나의 김치 냉장고는 저대로 사망할까? 아님 내일 다시 부활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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