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라 Aug 23. 2021

엄마의 놀이터

일상 이야기 (9)

오늘은 내가 임플란트 나사를 박는 날이다.

뭔 대수술인 양 겁에 질린 내가 며칠 전부터 오늘을 무서워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늘 아침 10시면 잠에서 깨서 남들 점심 먹을 시간에 첫끼를 먹는 동생이 말한다.


"언니 이제 죽만 무야 되는데 점심 맛난 거 묵자. 뭐 물래?"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는 동생. 마침 엄마도 와 있었고, 치과 가기 전 한 끼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동생의 제안에  엄마와 나,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셋이 점심을 먹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사실 며칠 전에 동창 친구가 알려준 봉덕시장의 칼국수가 먹고 싶었지만

달서구에서 남구로 가서 밥을 먹고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동생의 출근까지 시켜주고 나면

치과 예약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했다.

결국 가까운 곳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이것저것 메뉴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메뉴는 늘 한 시간의 토론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전부터 음식에 초연해 지기로 맘먹은 나는 대충 한 끼 때우자 라고 말했지만

세 모녀의 점심메뉴는 간자장에서 보쌈. 그리고 보리밥, 국수까지 다양한 후보군이 올라왔다.

며칠 전 음식을 과하게 먹고 난 내가 한 끼에 뭘 그리 목숨 걸고 메뉴 선정을 할까?

라는 회의감이 들었고 이게 다 못살아서 그런가 보다 라는 결정을 내린 후

공표를 했다.


"나 이제 음식에 초연할 거야!"


그 말이 일주일은 가겠나 하며 장담하는 지인들의 놀림을 들으면서

아직까지는 초연 모드라고 우기는 나.

결국, 차 안에 있던 현미 누룽지를 먹으면서 이미 배불러진 나는

엄마가 단골로 가는 막걸릿집에 가서 잔치 국수를 먹기로 했다.

사실 잔치국수 들어갈 배도 없었던 나는 비도 오는데 파전 하나로 때우려고 들어갔는데

세상에~ 잔치 국수가 단돈 3.000원이었다.

3.000원짜리를 하나 시키기 미안했던 우리는 국수 두 개와 전 두 개를 주문했다.


시드니들의 술집.

두류공원은 서울의 탑골 공원과 같은 분위기이다.

심지어 두류공원 안에는 박카스 아줌마 (매춘 할머니)가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십 대들은 인라인을 타고, 이십 대들은 치맥파티를 하고, 삼사십 대들은 공원 산책과 공연과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그리고 오십 대 이후들은 막걸리를 즐기는, 대구의 전연령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곳.


세상 모든 게 궁금한 나는 엄마에게 슬쩍 물어봤다.

"엄마, 여기에 진짜 박카스 아줌마 있어?"

"박카스 아줌마가 뭐꼬?"

"음.......... 성매매하시는 아줌마들"

"있다. 한 대여섯 명 있는 걸로 안다."

"지금 이 안에도 있어?"

"이런데 안 온다."

직업병이다. 엄마한테 별 걸 다 묻는 나.


나는 이 생경스런 시드니 주막이 신기했다. 둘러보았다.

혼자 와서 잔치 국수를 먹으면서 김치가 중국산이냐 국산이냐를 따지다가 주인 할머니들에게 욕도 같이 먹는

육십 대 할아버지

혼자 와서 술을 마시면 슬쩍 죽순이 할머니가 가서 마주하면서 술한병을 시키는 묘한 분위기

친구와 같이 와서 이른 술을 마시는 동네 병원 원장님.

오셔서 삼천 원짜리 국수 한 그릇에 인심을 베풀며 골든벨을 쳐주시는 동네 단골 할아버지.

떡을 몇 되 만들어 와서 돌리는 인심 좋은 할머니.


십 분이 지나자 주문한 잔치국수가 나왔다.

양을 적게 해달라고 특별히 주문을 넣었음에도 푸짐한 한 그릇.

한 젓가락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동생과 나는 눈을 마주 봤다.

내가 이제까지 먹은 잔치 국수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그때부터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고, 음식 앞에서 초연하겠다고 맘먹은 나는 이미 저세상에 가버렸다.

애호박을 채 썰어서 만든 오천 원짜리 호박전은 세상 단맛은 다 끌어 모은 듯했고,

청양고추를 가득 넣어 만든 삼천 원짜리 부추전은 가격에 놀라고 맛에 놀랐다.

그래도 잔치 국수를 이길 수 없었다.


한 그릇을 다 먹은 우리는 주방으로 엄지 척을 했다.

엄마가 잘 아는 집이고, 근처에 사시는 엄마가 점심과 저녁을 이곳에서 때우신다.

엄마의 놀이터인 이곳에 동생은 가끔 음식을 보내준다.


"엄마야. 남의 집에 가서 오래 있으면 눈치보인데이. 적당히 먹을 것도 좀 가지고 가고 해라. 얻어만 묵지 말고~"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 염치없는 경우를 종종 보는 우리는

엄마가 어디 가서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싫어서

자주 고기도 보내주고, 과일도 보내주고, 과자도 보내준다.


그냥 팔아주러 왔는 이곳에서 인생 국수를 맛본 우리는

내일도 점심은 이곳에서 먹자고 약속을 하고 나왔다.

어제 갈치를 보내드려서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이왕 드릴 거 두 박스를 드릴걸 이라는 후회도 했다.


엄마가 이십 년을 알고 지낸 이곳,

육십 대에는 이곳에서 주방일도 도와주고 했고, 이제 팔순이 넘으셔서 그냥 놀이터이자

식구가 되어 버린 이곳을 나는 겨우 두 번째와 보는 것이다.


내가 들어가자 주방의 이모와 주인 할머니가

"아이고 작가 딸 왔네~" 하고 반기신다

나는 이들을 모르지만, 이 분들은 나의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귀가 따갑게 들었다.

내가 티브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나왔을 때도 입이 닳도록 자기 딸이라며 자랑했을 것이며

두류공원 안 문화예술회관에서 뮤지컬을 하고 연극을 했을 때도 이야기했을 것이며

작품이 티브이에 나올 때마다 자랑을 했을 것이 눈앞에 선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사람이 자랑을 하면 자랑한 값을 해야 하는데 말만 그렇게 하면 욕한다. 그러니까 제발

어디 가서 내 이야기 좀 하지 마라!"

뭔가 해드리면서 꼭 이렇게 타박했던 나.


삼천 원짜리 국수 한 그릇이 이토록 맛이 있으니까

모든 화가 눈 녹듯 내린다.

이래서야 어찌 음식에 초연해질 수 있는가!

그렇지만.... 정말 많은 반성을 한 하루였다.


단비가 크면, 엄마가 놀고 있을 곳을 한번 들여다볼까?

어쩌면 지금 엄마의 모습은 나의 이십 년 뒤 모습이 아닐까....


오늘은 엄마한테 짜증 안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꼭 이 닦고 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