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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라 Sep 19. 2021

카카오와 나 홀로거리두기

일상 이야기 (10)

나는 일 년에 별다방 커피를 오십여 잔을 받는다. 어떤 해에는 백 잔 가까이 받았던 해도 있었다.

생일날이면 열 장 혹은 스무 장씩 보내주는 지인들이 있고, 가끔씩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날에도

커피를 선물로 보내는 분들이 많다. 

빙수, 치킨 편의점 상품권, 꽤 많은 선물들을 자주 받는 나.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순간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 서비스에 의해 되갚음이 된다.


내게는 원칙이 있다.

생일은 어설프게 친한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받는다. 어찌 보면 정말 친한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로 끝낼 때가 있다. 선물로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혹은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는 듯하다. 

결혼은 내가 갈 자리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자리에는 안 가고 본다. 그 이유는 축하를 해야 하기보다

내가 이 사람에게 부조금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내 축하까지 필요 없는 자리라 생각한다. 부고 알림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받으면 웬만하면 가거나 근조를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와 작품을 같이한 후배들의 결혼은 항상 축하 화환으로 대신한다.

몇십 년 연극배우로 버티며 살아온 후배의 가족들이 모이는 곳에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 이름 앞에 붙어 있는 극작가란 글자가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지라 꼭 보내려고 노력한다.

결혼식을 참가하는 기준도 있다. 그들의 결혼식이 살다가 하는 결혼식이거나 그런 경우에는 참석을 하는 편이다. 손님이 많이 없을 자리는 참가를 하고 손님이 많을 것 같은 자리는 화환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돌잔치는 직계 가족이 아니면 패스 해버린다.

돌잔치를 식당에서 하면서 친구들까지 부르는 풍습에 대해서 아직도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카카오의 선물 보내기를 자주 이용했던 나.

한동안 뜸했던 지인들에게 커피 한잔을 보내는 것도 꽤 낭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일 알람이 뜨고부터 어느 순간 고지서를 받아 드는 기분이 들었다.

받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그게 빚으로 남는 꽤 곤혹스러운 알림장을 받게 되면서  

이 친구가 내 생일에는 무엇을 보내줬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마치 치부책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었다.


그런데 작년 연말 그리운 사람들에게 선물 보내기를 누르던 중, 한 언니가 거절을 눌렀다.

그때, 나는 내 성의가 거절되는 것 같아 기분이 서운했지만 순간 거절하기 버튼이 있다는 것에 새로웠고

그 언니의 거절이 꽤 멋있었다.

그때 하나를 배웠다.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

그때부터 내게 오는 선물들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처음에는 모두 성의를 거절당한 것처럼 느꼈는지 당황하였지만, 그들도 나처럼 그러리라 믿는다.

음... 저 언니 좀 멋있는데~!라고 할 듯.

아 물론 부담 없이 받는 선물도 있긴 하다. 그저 커피 한두 잔 같은 것은 부담 없이 받는다.

나 또한 부담 없이 줄 수 있는 선물의 선이라고 생각하니까. 

선물을 받는 기준은 항상 내가 선물을 줄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수십 년간 사람들에게 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나는 사실, 십여 년 전부터 명절마다 오는 단체 문자에 보이콧을 했다.

조용하게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삭제해버린다.

그 사람이 손윗사람이 아니라면 삭제한다.

나 또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약속 장소 공지나 알림 이외에 명절 인사를 복붙으로 돌려막기 한 적이 없다.

이제는 나의 톡과 문자에 단체문자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배님들이 후배까지 챙겨서 좋은 말씀을 복사해서 쓰시는 것에는 그저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지만

나 보다 어린 친구들이 내게 그걸 보낸다면 나는 그걸 스팸문자 처리를 해버린다.

그저.... 명절이 아니더라도 문득 생각났을 때 나를 기억해서 한 두줄의 안부인사를 묻는다면

그게 별다방의 커피 쿠폰 열 장보다 더 값질 텐데...... 다들 명절에만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가보다.


아무튼 나는 올 추석에도 꽤 많은 카카오를 통해 오는 선물을 거절했다.

심지어 선물 받은 품목이 내가 좋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의 선물을 기다리는 내 동생이 있음에도.


작년 어느 날, 별다방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물었다.

"넌 왜 그 커피를 좋아해? 난 별로 던데. 난 내가 내리는 게 제일 맛있어."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언니야. 내가 샤넬 구찌 가방도 못 들고 다니는데 커피라도 명품 좀 들고 다니면 안 되나?"

웃겼다. 그리고 귀여웠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받는 모든 선물 쿠폰을 동생에게 줬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선물 받기를 거절하는 통에 커피 쿠폰을 받지 못한 동생이 볼멘소리로 말한다.

"그냥 받아서 내주면 안되나! 언니 니 너무 그카는 것도 사람 불편하게 하는 기데이"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던 동생이 말했다.

"아니다. 언니야. 받지 마라. 그래 그거 솔직히 너무 빚스럽더라. 은행에 빚도 많은데 그 빚까지 있으니까

힘쓰이더라. 그래도 커피는 받아라. 그건 싸잖아!"

이번 명절에도 그렇게 관계된 회사에서 주는 선물만을 받아서 어느 순간 카카오 선물함에 선물이 텅 비어있지만 그래도 나 홀로 카카오와 거리두기를 한 덕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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