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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씨 Dec 13. 2021

아는체 하기 좋은 역사 이야기

1부 이승만

#이승만부터전두환까지



알고 보면 #재미있는역사이야기 그리고 #아는체하기좋은역사이야기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은 한국 현대의 민주주의 역사를 아주 살짝만 훑고 가겠습니다. 아는 체하기 좋은 걸로만…


최근 정치권에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전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는데요. 그 이전에도 윤석열 후보는 이한열 열사의 조형물을 보고 ‘부마항쟁’ 이냐고 질문했던 이슈도 있었죠? 검찰총장을 지내고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의 #민주주의역사 의식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까요? 그 시절을 경험하신 분들은 자연스레 아실 듯합니다만 사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헷갈려 갑니다. 학생의 경우는 사회 시간에 배웠으니 잘 기억을 하고 있을까요?

이번 기회에 짧고 굵게 머리에 구겨 넣어 봅시다.

큰 사건사고로만 간단히 알아봅시다.

뉴스에서 이런 얘기 나오면 바로 알아듣고 잘 모르는 주변 분들에게 설명도 해주는 센스~~~ 어깨 힘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대통령 순서대로 나열하는 게 이해하기가 좀 더 쉽습니다.


짧게짧게 큰 명칭만 다룰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내용이 좀 길어지네요.

1부 이승만, 2부 박정희, 3부 전두환으로 세 번에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역사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각자 이해하는 바가 다르고 잘못 알고 서술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여서 더욱 더 그렇습니다. 관점이 다른 점은 이해를 부탁드리고 사실 관계가 다른 부분은

알려주시면 정정하고 저도 좀 더 공부하겠습니다.




[1부] #이승만 (1~3대 대통령, 임기 : 1948 ~ 1960년)


#사사오입 개헌(1954)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3선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재선까지는 가능합니다만 (지금은 5년임기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 이승만은 재선 임기중 대통령은 중임(두번)까지로 제한한다는 헌법을 없애는 개헌을 시도합니다. (대통령 중임제 철폐) 두 번만 하려니 아쉬운가 봅니다.

1954년 전체 국회의원의 2/3가 찬성해야 개헌이 통과됩니다만 203명의 2/3는 135.33 명이어서 136명이 되어야 개헌이 가능합니다. 투표 결과 135명이 나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사사오입의 수학이 들어갑니다. 135.33을 사사오입 (반올림, 반내림)을 하면 135명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승만의 3선이 가능한 개헌이 통과됩니다.




#315부정선거 (1960)

이승만의 권력욕은 끝이 없습니다. 4선을 위해 3.15 부정선거를 지릅니다.

전국의 공무원, 경찰 등의 공권력을 동원합니다.

깡패를 동원합니다.

투표자들을 3인 1조로 투표하게 하고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기 전에 자유당 측 참관인에게 보여주도록 하는 공개 투표를 시행합니다.

가짜 투표용지를 만들어 무더기로 투표함에 넣습니다.

투표자에게 돈을 줍니다.

자유당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의 득표율이 100%에 육박한 중간 결과가 나오자 70~75% 선으로 조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상상이 가능한 모든 부정선거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대단하죠!!! 현재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이 안됩니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지금도 부정선거 이야기는 여전히 나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국민이 의지를 표할 수 있는 최강의 권리이니까요.

#315 마산 시위 (1960년)

4.19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3월15일 부정선거를 직접 목도한 마산시 민주당 간부는 즉각 선거를 포기하고 시위를 벌입니다. 경찰이 강경 진압을 하게 되며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4월 11일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이는 4.19 혁명을 촉발하게 됩니다. 


#419 혁명 (1960)

3.15 부정선거의 규탄을 위한 마산시위가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거세게 시위가 확산됩니다.  경찰의 발포로 시위 국민들이 사망하지만 이는 오히려 국민들의 울분에 더 불을 지피는 결과입니다.

일주일 뒤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해버립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이기붕 일가는 양자인 이강석 소위에 의해 사살되고 이강석 소위는 자살합니다.

4.19혁명으로 내각책임제를 도입하고,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헌법재판소를 신설, 양원제 국회를 만드는 민주주의의 결실을 이룹니다.

하지만 4.19혁명은 미완성 혁명이라고도 합니다.

국민이 단결하여 부패한 정부를 끌어내리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만 국민이 원하는 차기 정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윤보선 대통령이 꼭두각시처럼 자리를 지키다 다음 해인 1961년 군인 박정희에 의해 기나긴 독재의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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