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차라투스트라 쉽게 설명하기,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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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대해 알아봅시다. 아~~~ 벌써 머리 아파!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저에게 철학자들의 사고는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있습니다.
책을 읽어도 깊이 성찰이 되지 않고 이해 또한 잘 안됩니다.
그런데 모르고 살기에는 영 섭섭합니다.
그러기에 아이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궁금증을 알아보겠습니다.
동화책 수준이기에 다소 정보가 얕거나 쉽게 풀어 쓴 부분이 있을 겁니다.
이 책을 디딤돌 삼아 차후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는 기회를 갖겠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안되면 그냥 외우는 걸로…
[아모르 파티, Amor Fati]
니체의 철학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아모르 파티’ 입니다.
운명애라고 해석하죠.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기 운명을 사랑하고 포기하지 말고 도전, 용기를 내는 정신을 말합니다.
니체가 말하는 모든 단어와 철학은 모두 이 ‘운명애’ 개념의 곁가지입니다.
김연자 가수의 ‘아모르파티’ 노래로 친숙한 단어입니다.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이는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이겨내는 용기를 가지고 그 속에서 사랑할 수 있는 일, 도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냅니다.
“그래, 올 테면 와 봐라, 나의 운명이여! 나는 나의 고통과 나의 실패를 사랑하겠다. 거룩하게 긍정하겠다.”
물론 생각하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당황스러울 거예요.
그러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용기를 가지고 그 사건 속에서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일, 새로 도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냅니다.
[강한 자 & 약한 자]
니체는 자신의 책에서 운명에 맞서고 항상 더 나은 나를 위해 고민하고 어떤 악조건도 이겨 내려 노력하는 사람을 강한 자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고통이나 두려움 앞에 쉽게 굴복하는 인간을 ‘약한 자’라고 합니다.
‘강한 자’는 힘 쎄고 권력있고 돈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운명애가 있는 사람이 ‘강한 자’ 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한 자들로부터 강한 자를 항상 보호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
조로아스터 (Zoroaster)를 고대 페르시아 식으로 읽으면 ‘차라투스트라’가 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사람입니다.
[독수리와 뱀의 뒤엉켜 있는 모습]
인간 사회를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사람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며 대립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표현한 모습입니다.
“나의 짐승들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림자]
우리를 똑같이 흉내 내며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이 움직이지만 진짜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진짜인 것이 아니라 진짜인 척을 하는 것이니까요.
[위버멘쉬]
영어로 overman, superman
우리말로는 ‘초인’으로 부릅니다.
슈퍼맨과 같은 초능력의 힘을 가진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위버맨쉬는 앞에서 말한 ‘강한 자’ 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맨쉬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니체의 정의입니다. 니체하면 떠오르는 중요한 표현이죠.
사람은 짐승과 초인사이의 중간체입니다. 초인으로 가기위해 노력하지만 이르지 못하고 자칫하면 짐승의 나락으로 빠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챙길 건 사람을 짐승과 초인 사이의 한 순간의 존재로 말하지 않습니다. 밧줄이라고 표현합니다.
과정이라는 뜻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말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단순히 기독교의 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절대적인 힘으로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것, 또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그 모든 것의 이름입니다.
신이라는 이름 하에 그동안 우리는 자기 운명의 주체를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 운명을 장악해온 신을 포기해야 함을 말합니다.
신의 죽음은 교황과 신학적 교리가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우리는 ‘근대’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모던 에이지’ 라고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사람인 근대인들은 더 이상 하느님의 명령이나 종교적인 율법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이나 전통을 무조건 따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을 하나의 목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한 목적이 인간을 위해서라는 내용이죠.
니체는 이러한 서양의 오랜 전통에 반대합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는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니체는 서양 사회에서 기독교가 사람들의 삶에 고통을 주고 또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던 것을 비판하고자 했습니다.
니체는 종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상, 사람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면서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한다면 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마치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다른 어떤 것은 없는지 의심해 볼 것을 촉구하는 말이랍니다.
니체는 더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것이 근대인들과 무신론자들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종교나 전통이 독차지했던 권위를 이제 과학이나 국가가 차지하여 전보다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낙타]
낙타는 ‘약한 자’를 말합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만 성격이 온순하여 아무리 무거운 짐을 실어도 반항하지 않습니다.
낙타가 무거운 짐을 불평 없이 잘 짊어지고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은 강인해서라기보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자]
사자는 용감한 정신을 말합니다.
사자는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낙타가 복종하기 위해 주인을 찾는 것과 달리, 사자는 명령만 내리는 주인에게 맞서 승리를 얻어 내기 위해 주인이 있는 장소로 달려갑니다.
원한 감정의 표출에 불과하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운 얄팍한 행동에는 과감하게 그 행위들을 비판하고 부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의심하고 회의하는 정신, 비판하고 부정하는 정신을 니체는 ‘사자의 정신’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명령에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명령을 거부하고자 한다!”
[아이]
사자의 용감한 정신이 우리가 도달할 최고의 상태는 아닙니다.
사자보다 더 용감한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정신입니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니체는 사자는 용감하게 부정하는 정신이지만 아이는 용감하게 긍정하는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니체가 보기에 아이는 최고의 발명가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세상에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상황에서도 엉뚱한 놀이를 만들어 내곤 합니다.
놀이를 하기 위해 아이들은 여러 가지 규칙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런 규칙은 다른 사람이 미리 만들어 놓고 꼭 지키라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으려면 과거의 기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대신 아이처럼 순진무구하게 ‘망각’해야 한다고 차라투스트라는 말합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망각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능력과 내 주변의 사람들 사물들이 달라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믿는 것이지요.
[르상티망, Ressentiment]
낙타들의 원한감정을 르상티망 (Ressentiment) 이라 합니다.
낙타는 무조건 복종을 하지만 전혀 화낼 줄 모르는 온순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낙타는 고통의 해결책을 분노를 표출하는 데에서 찾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 건 모두 네 탓이야!’
[놀이의 철학자]
니체는 ‘놀이의 철학자’ 라고 불립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아이가 놀이하듯이 삶을 살라고 이야기합니다.
놀이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강한 자입니다.
강한 자는 어떤 곤경이 닥쳐와도 쉽게 굴복하지 않아요. 강한 자들의 삶은 구르는 바퀴처럼 멈추지 않고 잘 굴러가지요. 또한 놀이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영원회귀]
무언가가 영원히 회귀한다는 뜻, 즉 영원히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니체는 운명애를 지닌 사람은 영원 회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진심으로 자기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매번 이 삶을 선택할 겁니다.
강한 자가 되어 인생의 영원회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사위 놀이]
니체는 삶을 주사위 놀이에 비유했습니다.
삶이란 신들의 탁자에서 하는 주사위 놀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삶을 그토록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핵심 단어 위주로 니체를 쫓아가 봤습니다.
이 정도만 알았다면 니체는 마스터한 걸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