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일 없는듯 스쳐가줘요
망우주적 팬데믹 때문에 쓰지 못했던
내 소중한 휴가를 써버리니 실제 출근할 날이
불과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재택근무 때문에
평소에도 회사를 드문드문 가고,
가더라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마주하지 않다 보니
출근이란 개념도 뭔가 상당히 흐릿해진 상황.
휴직을 해도 이것이 휴직인지 휴일인지
분간이 잘 안 갈 수도 있겠다..
아무튼 오늘 출근하고, 다음 주 하루..
갑작스럽다.
어른의 시간은 이렇게나 빠르다.
장장 16개월이 넘는 나의 휴직도 그렇게 흐르겠지.
눈 깜빡할 사이.
다른 이들의 휴직도 그랬다.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
사람들은 돌아왔고, 지난주에 못 본 사람들처럼
인사하고 밥 먹고 용무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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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직전 부서의 상사와
다음 주는 현 부서의 상사와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한동안 못 본다고 챙겨주는
선배 동료들의 마음 씀씀이 정말 고맙다.
좀 길긴 하지만
무슨 전쟁터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은 정정한다. 육아는 전쟁터 맞지.. 암)
이런 작별(?)의 의식을 치르는 것은
뭔가 어색함을 예고한다.
어릴 적 여름방학처럼..
개학 날에는 늘 어색했다.
성장기 우리들은 잠깐만 못 봐도
너무나 달라져 있었으니까.
기대감과 두려움.. 쭈뼛거림..
학습됐던 부끄러운 감정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러므로
호들갑스럽지 않게 SSG 갔다가
주말을 보내고 온 듯 SRR 와야 한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내 키가 더 커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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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이 부릅니다 <스치듯 안녕>
“왜 그리 놀라나요.
그 어색한 표정하지마.
아무일 없듯이 스쳐가줘요.
괜히 인사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