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익사의 추억 그리고 퇴행성 관절염
수영을 못한다.
전혀 못한다.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그래도 개헤엄은 될 거 아니냐고 하는데
개나 소도 하는 헤엄을 나는 못한다.
장모님도 개구리헤엄을 치는데
나는 개똥보다도 못 뜬다.
가만히 힘을 빼고 있으면
바닥까지 그대로 가라앉는다.
잠수부였다면 엄청난 능력이다.
차라리 '해남(海男)'을 해볼까..
#익사의 추억
물에서 죽을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죽을뻔한 수준이 아니라 죽다 살아났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가을
가족들과 함께 네팔 포카라로 여행을 떠났다.
포카라는 '포카리스웨트'의 배경지로 유명한
페와 호수(Fewa)가 있는 네팔의 휴양지다.
포카라는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찾아야 하는 베이스캠프다.
포카라에 도착하면
히말라야의 산 중에서도
가장 영험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여신의 산'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가
압도적인 자태로 이방인들을 맞이한다.
한낱 미물인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겸손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이 도시를 거쳐간다.
그래서 이곳은 휴양지라고 하지만,
여느 휴양지의 들뜸 없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우리는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마운틴뷰의 고급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몬순기후인 네팔은 너무나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시월이었지만 마치 봄 날씨와 같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꽃과 나뭇잎이 차분히 흔들거렸다.
안식이 이곳에 있었다.
이곳이 천국이고 낙원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산과 구름과 바람과
꽃과 나무가 이곳에서
모두 휴식과 안녕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며칠간의 고된 트레킹을 추억하며
모든 짐에서 해방된 채 휴식을 만끽했다.
아내는 좋은 볕이 들어오는 숲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내가 다 좋았다,
나는 아이와 함께 수영장으로 갔다.
건물 너머로 마차푸차레가 밝게 빛나고 있었고,
여행자들은 선베드에 누워 책을 보거나
음료를 마시는 등 모두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늘의 구름을 그대로 담아내는
천국의 모습을 한 고요한 수영장
그곳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수영장에 들어가 있는 외국인들은
그냥 물에 몸을 담근 채
팔을 수영장 경계로 올려 책을 읽었다.
그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수심 1.3-1.6m
서양인들에게는 아주 야트막한 수영장이다.
나도 키도 크고, 책도 읽고 싶었다.
키가 작은 나는 몸도 다 잠기고..
한껏 들떠 있는 애도 있다.
이 그림과도 같은 곳에
'분홍색 튜브'를 띄웠다..
안다. 이 풍경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란 것을..
하지만 우리 모두는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애도 어른도 부유물에 의존해야 한다.
나는 뭔가 '못마땅' 했다.
나도 저들처럼 멋있게 휴식하고 싶다.
됐고..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추억 만들고 잘 놀아줘야지..
마인드 컨트롤은 했지만,
이미 '못마땅한 정신'은 몸을 지배했다.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척'만 하면서
계속 피해 다녔다.
나까지 튜브를 할 수 없었기에
나는 까치발을 딛고 수영장을 돌아다녔는데,
암 튜브(arm tube) 등으로 무장한 아이들은
마치 모기떼처럼 나에게 달라붙었다.
시간이 꽤 흘러 점점 기력이 빠져갔지만,
아이들은 지칠 줄 몰랐다.
신나게 놀아줄수록 더욱 신이 났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격하게 놀기 바라는 아이들과 대치가 계속됐다.
어쨌든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숙소로 들어갔다.
엄마가 들어가고 나서
나는 더욱 지쳤다.
놀기 싫었다.
나도 맥주..
잘 놀아주지 않는
고장 난 아빠에게
아이들은 더욱 격하게 매달렸다.
나는 아이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수영을 못하지만
잠수를 해서 한숨에 건너편으로
도망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얼굴에 잔뜩 즐거움과 기대감을 담은
아이가 마치 사자처럼 날아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담갔다.
아이는 마치 매와 같이
나의 목을 두 팔로 낚아챘다.
나는 숨을 제대로 들이마시지도 못한 채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큰일 났다.
나는 수영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었고
발은 이미 바닥에 닿지 않았다.
아이는 내 목에 달렸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낄낄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떼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리고 반대편 벽으로 필사적으로 발을 옮겼다.
물속에 잠긴 나는 소리도 칠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입에 공기를 한껏 부풀린 채
성큼성큼 벽으로 걸어갔다.
숨이 곧 멎을 것 같았다.
숨을 쉬기 위해 아이를 업은 채
하늘을 향해 힘껏 점프를 했다.
하지만 아이의 무게 때문에
물만 가득 입에 머금고 물속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물 속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분명 눈물이..
아.. 이렇게 죽는구나..
사람이 자기가 죽을 줄 알고 죽는 게 아니구나.
진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밖은 너무 평화로울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1.6m의 풀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 못할 것이고,
시끄러운 코리안들 때문에
평화를 놓쳐버린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버릴 것이다.
나는 찍소리 한번 못하고,
아이의 웃음소리에 묻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폐에 숨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도움닫기에
내 인생 전부를 건다.
정말 인생이 '주마등'과 같이 스쳐갔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했다.
내가 죽을 때 네가 웃고 있어서
얼마나 트라우마가 될까.. '미안하다'
필사적으로 하늘로 점프했다.
저 밖은 지상일까.. 천국일까..
중지와 검지를 수영장 담위로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껄껄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몸이 다시 가라앉았다.
검지에 힘을 주고 거의 '똥을 쌌다'
이승과 저승이 한끝이다.
아버지여,
내 아들을 용서하소서.
저 이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만약 제가 다시 살 수 있다면...
하늘 아버지가 나를 구했다.
超
뛰어넘을 초
초인(超人)..
한계를 뛰어넘은 인간..
나는 초인이 되었다.
영어로 슈퍼맨..
손가락이 수영장 담벼락에 걸렸다.
한 손가락에 의지해 100근의 몸을 끌어올렸다.
살았다.
할렐루야... 헉헉헉...
수영장 담벼락 위에
너무나 초라하고 흉하게 엎드려
거친 숨을 쉴 새 없이 몰아 쉬었다.
콧물과 눈물과 침과 수영장 물이 뒤범벅되어
배수구로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이 와중에도 목에 매달려있다.
아이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었다.
아이는 '악' 소리를 내며
옆으로 나뒹굴며
폭풍오열을 시작했다.
이 고요한 리조트에
한국인 아빠와 아이가
흉측한 꼴을 하고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그때 집에서 엄마와 휴식하던
딸애가 엄마의 호출을 전하러
수영장에 왔다가 그 장면을 보게 됐다.
딸애는 엄마에게
이 황당한 광경을 전했고
엄마는 '이 미친것들'을 잡으러
현장으로 출동했다.
여전히 거친 숨이 계속되고
어지러운데.. 아내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일어나"
아내의 목소리는 작았다.
이 평화로운 리조트의 풍경에 걸맞게
저음이었고 조용했다.
"일어나라고"
약간 힘이 들어갔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아내는 아이만 데리고 들어갔다.
내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대로 밤이 오길 기다리고 싶었다.
절대 얼굴을 들지 않을 거야.
집에도 안 갈 거야..
그냥 확 뒤져버릴걸..
나는 고개를 들고
딱 달라붙은 머리를 정리한 후
BP가 돌출된 수영복을 적당히 떼내고
콧물과 침을 닦고 슬리퍼를 신고
주변의 널브러진 분홍색 튜브와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야 한다.
1.6m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는
외국인들이
몸을 담근 채 책을 읽던
천국과도 같은 그곳에서
나는 진짜
천국을 다녀왔다.
#아쿠아포비아(Aquaphobia)
여행 직후
첫째 아이를 수영장에 보냈다.
둘째 아이도 지난해 수영장에 보냈다.
8월 육아휴직 후
나와 아내도 드디어 수영 학원을 끊었다.
무슨 화려한 수영 기법을 익히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물에 빠졌을 때 적어도
누군가 구해줄 때까지 버틴다던가
가족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일단 물로 뛰어들 수 있는 수준이면 좋겠다.
휴직 기간 중 반드시 해내고 싶은
투두 리스트 1순위가 수영이다.
이 의지가 깨지지 않도록
아침 6시 첫 타임으로 등록했다.
사흘간 잘 나갔다.
부부가 함께 으쌰 으쌰 해주며
서로 대견해하며 너무 좋았다.
이제 여행을 가도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주가 지나고,
그다음 주.. 아내의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라도 나갔다.
절대 이 의지를 꺾지는 못할 거라고...
진도가 잘 나갔다.
이제 플로팅 보드를 잡지 않고
옆으로 호흡을 하며 4~5번 정도
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가는 수준이 되었다.
그랬는데,
허리가 아팠다..
갑자기..
안 하던 운동을 해서인지..
발차기를 할 수 없었다.
호흡을 하겠다고 머리를 들면 허리에 쇼크가 왔다.
강습을 중단하고 집으로 왔다.
대충 도수치료나 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 앞 정형외과로 갔는데,
웬걸.. 척추주사를 맞으란다.
디스크는 아니지만, 4-5번 척추가 경직되고 많이 좁혀졌다며..
퇴행성 관절염이란다...
무려 91,000원어치의 진료를 받았다.
주사를 맞고 다음날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허리는 수영을 할 정도로 돌아오질 않는다..
덴장..
내가..
내가..
퇴행성 관절염이라니...
계획은 완벽했는데..
뭔가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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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