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재회 再會 다시 만남, 두 번째로 만남.
재회의 사전적 의미는 다시 만나는 것을 말한다. 나는 헤어진 직후 마음을 읽는 알고리즘에 의해 헤어진 연인과 다시 재회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을 수없이 보곤 했다. 애써 피하려고 해도 지독한 알고리즘은 매일 밤 화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사실 난 키가 컸던 우직한 사람 A와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조금 더 사랑을 알고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온전히 그 사람에 대해 더욱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옷은 이렇게 입어줄 수 있을까?"
"오늘은 여기로 데이트하러 가자!"
우리의 연애는 상대에게 바라는 게 많았던 나로 인해 순탄치 못했다. 나는 늘 의견을 제시하고 그가 따라주기를 원하는 연애를 했었고, 언제나 그는 내 의견을 수용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조금씩 답답하고 그가 나에게 보여주는 사랑이 너무도 당연하게만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사랑이 식었음을 깨닫고 그에게 이별을 고했더랬다. 그때는 눈앞에서 눈물을 보이던 우직한 그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별 다른 생각 없이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던 날 밤.
잘 지내?
그의 문자였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동네 있는 카페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그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는지 이전보다 훨씬 멋있어졌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환하게 웃으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었다. 그때 바로 느꼈다. 우리의 재회가 시작될 것임을.
그를 보면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고, 그렇게 재회 후 첫 데이트를 하는 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척 떨렸다. 나에게 재회란 그가 만들어준 형태와도 같았다. 그리하여 나에게 재회는 다시 만나면 오히려 더 좋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면들을 더욱 깊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고 정의되었다.
그러나 B라는 그는 달랐다. 자신의 인생에 재회는 다시는 없으며 어차피 같은 이유로 헤어질 것이 뻔하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와 만나면서도 그는 철저히 자신의 가치관을 믿고 행동했다. 그는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개인주의적이고 냉철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여행을 잘 다녀오라는 그의 말을 끝으로 영원히 끊겨버린 우리의 통화는 이후로도 울리지 않았다. 또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울리지 않을 것임을.
그와의 이별을 마주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무엇보다 슬프게 다가왔던 사실이 '우리가 영영 재회라는 것도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구나.' 하는 점이었다. 미래를 그려가던 우리에게 있어 그는 나의 인생을 온전히 그리고 나는 그의 인생을 오롯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토록 애틋한 재회조차 허락되지 않을 사이가 되어버렸음이 마치 물에 젖어드는 솜이 가득한 옷처럼 슬픔의 무게에 슬픔을 더해 자꾸만 나를 강하게 짓눌렀더랬다.
이제는 울리지 않을 전화기를 쳐다보는 일도, 집 앞에 익숙한 번호판의 차량이 서 있을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는 일도, 미처 잊지 못한 그의 아이디를 눌러 SNS에 들어가 보는 일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그를 상상하는 일도 조금씩 정리해 가고 있다. 어느샌가 A로 인해 정립된 재회라는 단어는 B로 인해 나에게 있어 새롭게 정립될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옮고 그름을 절대적으로 나누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은 유난히 A가 더욱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