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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o Jul 07. 2021

슬기롭지 않은 의사생활

[의사의 길] 난 최고의 톱니바퀴가 되는 길로 가고 있었다.

'말해, 말하고 싶으면, 근데 절대로 안들어.
      I know what you're saying
 근데 이건 다 내문제!
내 삶, 내 맘, 나의 전부 다 내 맘대로 할래'



평소 유튜브 광고가 나오면 대부분 건너뛰기를 누르는데,


'제시'라는 가수가 나와서 하던 제모기 광고에서 나오는 이 노래를 3초 정도 듣다가 버튼을 못 누르고 결국 full로 다 들어버렸어요.


나 어릴때는 그랬는데...누가 '널 위하는 말이랍시고' 나의 행동을 교정을 하려고 하면 (주로 어른들이),



'떠들어라, 니가 뭔말 하는지는 알겠어. 근데 난 절대로 안들어. 난 내가 뭘 원하는지 내삶은 내가 원하는대로 살꺼야.'


내 영혼이 하는 노래를 듣고 매일 같이 불러야지 그랬었지요.


여기서 '었다'라는 말이 나오지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영혼이 부르는 노래는 듣지 않고,

사회의 톱니바퀴중에서도 위치가 제일 좋은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애쓰던 것이...


생각해보면 제 안의 '작은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하는 경쟁적인 녀석이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순진하기까지해서, 


사회에서 말하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능 0.05%안에 들고, 과중에서 제일 좋은 의대를 가고 그 의대를 차석입학하고 졸업도 최우수졸업생으로 하고, 그러면 진짜 행복해질 줄 알았지 뭐예요.


전 정말 내몸을 갉아내면서 톱니바퀴로 만들고 있었어요.


그 후 수련받으면서 병원의 '태움' 문화를 겪고 48시간중 4시간도 못자고 1주일에 5일씩 당직을 설 때도 무지막지하게 버텼어요. 물러난다는 것은 제 옵션에 없었거든요.


윗년차, 교수님들은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아침마다 내가 전날 저지른 실수들은 돌아가면서 지적하고 하도 욕을 해서, 그냥  아침이 안왔으면 좋겠다고 매일매일 생각했지요.


한번도 '고난'에서 도망쳐 본 적 없는 나는 그냥 버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나마 옆에서 같이 고난을 겪던 동기들과 서로 으쌰으쌰하며, 힘들 때 같이 울면서 덕분에 버틸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 무식하게 버텼어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그냥 mic들고 니들은 뭘잘났냐~ 디스해주고  나왔어야..)


어찌저찌 '전문의'라는 타이틀을 따고 나왔는데, 그럼 그때부터 정말 행복해졌을까요?




전 아니었어요.



환자를 열심히 보고 그분들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고 보람차기도 했지만, 다른 직업들처럼 의사라는 직업도 '순위'라는 것이 있었거든요.


겨우 남과 비교하는 경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전문의를 따고 나면  다른 의사들이 부러워하는 2가지의 성공의 길이 있답니다.



첫번째는 빅3 또는 인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되는 라인을 타는 것이죠.

이것을 위해서는 전공의때부터 논문을 기계처럼 써내야하고 윗교수님의 뒷치닥거리는 덤이라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그런 삶은 살수가 없답니다.


펠로우와 조교수 임상조교수 부교수등등 테뉴어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고,그리고 아무리 내가 논문을 잘 써도 지도 교수에게 밉보이면 교수되기는 글렀다고 보면 됩니다.  


일명 노예의 길을 걷고 플러스로 운까지 있어야(적절한 시기에 자리가 나야) 교수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두번째는 필드에 나와서 중소병원이든 대형병원이든 2차병원이든 과장, 부원장으로 들어가서 기술을 충분히 갈고 닦은 다음에 성공한 대박 원장님이 되는 거예요.


첫번째 길이 명예로 가는 길이라면 이 두번째 길은 부의 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어느 길로 가야했을까요?



남편이 표현하길 은근한 반동주의자인 저는 교수님들의 횡포를 견딜 자신이 없었어요. 


물론 좋고 훌륭한 교수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저는 그런 운은 별로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첫번째 길은 애초에 포기를 했지요.


그렇다면 남은 것은 두번째 길로 가봐야죠. 부의 길로 한번 가보입시더! 하고 호기롭게 당시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고 돈많이 벌고, 환자들에게 스타대접을 받으시는 원장님의 부원장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대학과는 약간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 그렇지만 실제 필드에서 환자들의 1차진료를 책임지면서 나름의 기술을 만들어내서 일구어낸 원장님을 보니 '와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렇게 배워서 나만의 것을 만들어서 나가서 개원하면 난 진짜 대박이다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어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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