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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Sep 16. 2017

좋아하는 게 하나 더,
두근두근 해!

<드래곤볼 오리지널> (1985) / < 드래곤볼 Z> (1989)

20년 넘게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드래곤볼 시리즈. 일본 만화지만 영어권뿐만 아니라 남미에서의 인기도 대단해서,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인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만화 캐릭터다. 미디어에서 다뤄질 때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심슨과 양대산맥을 이룬다는 느낌. 드래곤볼을 보지 않았다는 건, 원피스를 보지 않았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보통의 인기 만화는 책이든 애니메이션으로든 취향의 문제로 여겨지는데, 드래곤볼은 80~90년대에 10대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보지 않을 수 없던 것'인 수준. "에네르기파"로 번역되는 "카메하메하"는 누구나 연습해 본 적 있는 그런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드래곤볼을 1화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카메하메하를 들어는 보았으나 눈으로 본 적이 없고, 사이야인은 예전까지 사이언인으로 듣고 휴대전화 광고를 동시에 떠올리곤 했다. 관심이 정말 너무 없어서 손오공이 원숭이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처음 알아서, 이 만화의 주제에 대해 굉장한 혼란을 느꼈다. 구슬 모아서 소원 이루고 적들을 해치우는 명랑한 액션만화인 줄 알았는데 웬 괴수물이 되는 건가 했으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드래곤볼을 보지 않았다는 것에 적잖이 놀라곤 했는데, 역시 가장 놀란 건 남편이었다.



무언가 팬으로서 열광하는 건 대체로 내 쪽이고, 남편이 유일하게 '덕후'라고 할 만큼 좋아하는 건 많지 않다. 그런 그가 마치 애정을 몰아서 좋아하기라도 하듯 유일하게 소박하게나마 '덕질'을 하는 대상이 있었으니 그게 드래곤볼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걸, 늘 그가 그래 준 것처럼 나도 알아 가고 싶었지만 역사가 깊은 만큼 분량이 방대해서 보기 시작하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약속한 게, 결혼하면 드래곤볼을 같이 봐 주자는 거였고 결혼 1년이 지난 올해에 시작하게 됐다. 만화책보다 더 디테일하고 긴 TV 시리즈 버전으로 오리지널부터 Z까지 틈틈이 봤다. 룰은 두 개. 남편은 물어봐도 스포일러를 이야기하지 않고 이해를 위한 도움만 주기, 나는 궁금하다고 검색해보지 않기. 덕분에 2017년의 여름 한 철은 드래곤볼과 함께였다.





리마스터했다지만 80년대 만화라서 아주 보기 좋은 건 아니다. 요즘 만화에 비하면야 당연히 아쉬움이 있지만, 잊어버리고 보기엔 1화도 충분하다. 짧은 텀으로 긴장감을 줘야 하는 주간연재. 그걸 10년 넘게 지속한 만화를 애니메이션화 했기 때문에, 초조한 마음이 쉽게 줄지 않는 것. 애니메이션에만 있는 맥락상 크게 필요 없는 번외편에서는 조금 지루한 감이 있지만, 천하제일무도회가 시작하는 이후로는 매 순간이 주인공 손오공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설렘을 갖고 보게 된다. 드래곤볼에 흔히 있는 지적인, 비현실적으로 강해진다는 것과 자꾸 부활한다는 것은 의외로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거듭하면서까지도 계속 성장할 거라는 기대감이 드래곤볼을 끝까지 보게 하는 힘.






아직 많은 번외 시리즈가 있고, 아직도 원작자가 현역으로 작업하는 슈퍼 시리즈도 있지만 이제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느낌이다. 게이머로서 흔히 보게 되는 "전투력 9만이 넘어!"의 드립을 이제 온전히 이해할 수도 있다. 아이폰 X가 왜 베지터 에디션이라고 불리는지 이해할 수도 있고. (...) 무엇보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걸, 나도 같이 좋아할 수 있고 드래곤볼 드립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제일 깨알 같은 즐거움. 긍정적인 남편은 손고쿠(손오공)의 팬이지만 나는 고쿠의 멋짐을 인정하긴 해도 피콜로와 베지터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 현실적인 시각과 점잖은 면도 멋지지만,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큰 변화를 겪어 온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점은 굉장한 매력이니까. 누가 뭐래도 둘 다 목소리까지 멋지다! 만화책으로 봤다면 알 수 없었을 오리지널 일본어 대사들과 목소리를 보고 들었다는 게 만족도를 더 주는 것 같다.



주인공 손오공뿐 아니라 동료들은 물론 적들까지도 캐릭터가 개성 있고 뚜렷하다. 여러 캐릭터에 두터운 팬층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요소 중 하나. 드래곤볼 성공의 원인이야 곳곳에 있겠지만, 분명한 건 이 인기가 하루아침에 다시 식어버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오늘 새벽부터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 <드래곤볼 파이터즈 Z> 게임은 오리지널리티를 상당히 살린 연출로 주목받고 있다. 이 게임이 출시되는 내년 초에는 다시 한번 열풍이 불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슈퍼 시리즈로 실망하고 있는 팬들에게 드래곤볼의 인기를 또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로선 이제 '덕질'을 시작해 볼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시점에, 제대로 빠져들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건 두근두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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