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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Jul 11. 2021

5. 새로운 접근법(1)

도덕과 진화론을 버무리다.

 이제, 신, 진리, 선이라는 개념을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자.

 인간은 연역적 사고를 좋아하므로, 출발이 되는 참인 명제(공리)를 찾는 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현재 결론인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절대적 참이라는 것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진리를 단순히 "생각"이라는 단위로 바라보자.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1+1=2이다."라는 명제는 참이다. 그러나  페아노 공리계가 선언되지 않는 경우에는 참 거짓은 판별하지는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인간의 무의식 중에 판별하고 있는 모든 선, 악의 명제를 단순히 "생각"이라고 여기자. 즉, 선, 악을 판별하는 어떤 존재를 없애보자. 그럼 어떻게 될까? 이와 유사한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다."


 신이 모든 생물을 창조하고, 자신의 모습과 가장 닮은 형상을 인간에게 부여했다고 주장하는 창조론. 자연스럽게 인간과 동물, 심지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급을 정당화하게 되었고, 종교적 이념과도 부합했다. 이런 창조론의 입장을 고수했던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연역적 뇌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생명의 진화 전체를 보지 못하는 한계, 즉 인간이 자신이 태어난 시간만을 관찰하고 의식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선사시대 이전, 그리고 인간의 뇌가 의식을 깃들 만큼 비상하지 않는 시절을 알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이처럼 극적인 인간이란 존재, 생명이란 존재를 누군가 설계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작위로 바뀔 수 있다는 진화론의 입장은 마치, 종이 상자에 프라모델을 넣고 흔들었더니 프라모델이 완성되는 것과 유사하다."


 진화론의 자연선택과 돌연변이(확률)를 극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생명체의 모든 부위를 바꾸는 것이 아닌 아주 조금씩, 한 부위씩만 무작위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누적되어서 먼 과거의 생명체와 비교했을 때 커다란 변화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조금씩 바꾸게 하는 것이 유전자다. 수많은 유전자 풀에서 특정 돌연변이 유전자가 생존에 유리하고, 그것이 후대로 계속 전달되어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다. 


 다시 "생각"으로 돌아와 보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은 한계가 있을까? 이 대답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아야 한다. 인간의 생각은 뇌의 전기적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대뇌의 새로운 영역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브로카, 베르니케 영역이라고 불린다.) 활용하는 범위가 다른 동물에 비해 넓어졌다. 


 1. 생각의 이론적 총량

 잠시 상상력을 이용하여 가정을 해보자. 두뇌 하나하나를 이루는 모든 신경세포와 이를 연결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얼마나 될까? 이는 시냅스가 가능한 경로의 개수이며, 수학적으로는 경우의 수 곱의 법칙에 해당한다. 시냅스의 개수가 수십에서 수백조 개이니까,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모든 시냅스가 생각, 사고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가늠을 위한 것이다.) 이를 생각의 이론적 총량이라 하자. 

 

 2. 한 개인의 뇌

 한 인간의 뇌는 어떨까? 이런 이론적 총량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어도 완전히 이용할 수 있지는 않다. (가능하다면 아마 그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유전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특정 시냅스 연결이 자동으로 이어지도록 자동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특정 경향성을 띄게 된다. 특정 행위, 상황에 대한 무조건 반응, 습관, 체화, 선을 판단하는 기준, 감정 등이 이 경향성에 해당한다.

 이 자동화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인간의 뇌 발달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부분과 환경적(문화적, 밈이라고 불린다.)으로 상호작용하는 부분이 혼합되어 발달함에 따라 한 인간의 사고 체계가 고착화된다.(물론 완전히 불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행동, 감정, 느낌, 생각 등 매우 다양하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런 무의식의 심층부, 선의 체계에 각 개인의 도덕적 판단, 윤리적 결정 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시체를 보고 공포감과 혐오감을 느끼고,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등 이런 것들은 교육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단순히 살인이 죄악이다라는 교육만으로는 그 죄책감이 너무 거대하다. 이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보편적인 도덕, 윤리가 유전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닐 수 있다. 문화적으로 전달되는 것도 분명히 있다.


 "도덕이란 개념은 밈과 유전자의 생존이 뒤엉킨 지점에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밈은 다른 밈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도덕, 윤리는 이 밈과 유전적 생존 우위(자연선택)가 적절하게 혼합되어 오랜 시간 유지된 존재들이다.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모든 "생각"에 대해 각 개인이 자신이 지닌(유전적+문화적으로 지니게 된) 선의 체계로 이를 판별한다. 심층부에 존재하는(유전적>>문화적) 개념들은 많은 부분이 일치하며, 주변부에 존재하는(유전적<<문화적) 개념들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문화적 교류가 적었던 시기에는 변화가 매우 더뎠다.

 

 3. 두뇌 간 상호작용

 이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자. 하나의 뇌가 아닌 여러 개의 뇌가 충돌한다. 한 인간의 뇌 안에서 "생각"이라는 도덕 유전의 단위가 변화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뇌가 경쟁하고, 상호작용할 수도 있다. 뇌에서 가능한 모든 생각의 총량을 인간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발현할 수는 없다. 분명 어떤 경향성이 존재한다. 그럼 현재까지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존재할 모든 인류의 생각의 총량이 뇌에서 가능한 모든 생각과 같을까? 아마 이런 관계식이지 않을까? 인류 전체의 총량=< 가능한 모든 생각. 그래도 한 인간이 일생에 걸쳐 떠올릴 수 있는 생각보다는 인류 전체가 많은 것은 확실하다.

 그럼 인류 전체의 총량으로 접근하자. 이제 이것으로 도덕에 대해 접근을 한다. 도덕을 참, 거짓, 선, 악으로 곧바로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각 개인의 선의 체계에 따른 판단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의 생각에 대한 각 개인의 판단이 비율로 나타난다. 마치 확률분포처럼. 이는 보편성과 개별성이 드러나게 된다. 즉, 99%가 참이라고 대답하는 명제라도 1%가 거짓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리고 거짓이라는 답이 1%의 선의 체계에서는 합당한 대답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우리는 도덕의 보편성을 절대성으로 착각하고 있다. 시대에 따른 도덕적 이념의 변화는 이 개별성이 보편성이 되는 순간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예 제도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감정적으로 노예제도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그런 예시는 노예 제도뿐만이 아니다. 전쟁, 홀로코스트,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 등 무수히 많다.

 잠시 살인자의 뇌를 빌려보자. 흔히 사이코패스라는 사람들의 뇌는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살인이 악이라고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정을 한다. '살인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자 한다. 타인을 죽임으로써 죽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 등등. 그러나 정말 순수하게 살인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들은 이런 생각까지도 할지 모른다. "살인이 정말 선일까? 어쩌면 살인은 악한 행위가 아닐까? 아니야, 그래도 살인은 선일 꺼야." 우리가 무언가를 의심한다면, 역설적으로 우리 뇌에서 옳다고 믿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즉, 살인이 악이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자체가 이미 그의 뇌 안에서는 살인이 선이라고 믿고 있으며, 사고 체계가 살인은 선이다라고 굳어진 셈이다.

 정말 머나먼 과거에는 살인이 선이라는 뇌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 모든 인간이 살인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살인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피엔스>에서는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본다. 이 종족 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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