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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Jul 09. 2021

4. 여러가지 사상과 허무주의

절대적 가치의 상실

그럼 내면에 존재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이 진리인가?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세계관이 분화한다.

1. 절대주의

 인간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객관적(혹은 절대적)인 진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진리를 모든 인간의 내면에 부여받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외부에 절대성을 찾고자 한다면(의식 너머의 존재를 찾고자 한다면) 해당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리적 모순은 없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든다. 절대주의는 인간을 발전시킨 의심이라는 존재를 거세하기 때문이다.


2. 상대주의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각 개인이 믿고 있는, 각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믿음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자기 유사성 문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절대주의라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이니까.)


 3. 허무주의

1) 회의주의

 인간이 진리를 가지는 것,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사상이다. 허무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한 사상이다. 그러나 의심이라는 관념 역시, 무한의 과정이다. 그 결과 끊임없이 의심한 결론이 "판단 중지"라는 결론이다. 무한한 과정을 하나의 진리(하나의 문장)로 담으려 했을 때 발생하는 자기 유사성의 문장인 셈이다.


2) 허무주의

 인간의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어떻게 보면 상대주의에서 언급한 진리의 개인화로 인해 발생한 사상이기도 하다.) 인간 외부의 절대성을 찾는 것이 인간의 이성, 경험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능동적 허무주의라고 한다.) 실제 허무주의 사상이 만연했던 시기에 삶의 의미를 상실해 시대 전체가 우울과 허무의 늪에 허우적거렸다고 한다. 그 시기를 예견했던 철학자들은 (대표적으로 니체가 있다.) 염세주의나 반 지성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렇게 세계관의 분화는 기본적으로 출발점을 외부에 두느냐, 내부에 두느냐에 따라 달렸다. 


 수세기 동안 찾아 헤맨 결론이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에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각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것 같은 무게감에 위태롭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실존주의(능동적 허무주의로부터 파생)로 발전한 철학에 의해, 더 이상 인류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우리들을 도와줄 수 없다. 개인의 가치를 개인이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가장 큰 자산인, 정보의 전달 역시 상실되었다. 개인이 태어나면서, 각 개인이 찾아야 하는 가치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리셋이 되는 것처럼, 처음부터 찾아나가야 한다. 보편적인 도덕성이나, 윤리, 법은 전달될 수 있더라도, 결국 내면의 가치는 개인들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 글 역시, 개인적인 견해라고 미리 언급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뒤에 언급되는 것들은 사람마다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한 인간이 가진 생각은 타인이 평생을 걸쳐 고민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창의성, 잠재성을 지닐 수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길을 찾아줄 수 있는 것이다. 그 길을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생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설령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아무리 끔찍한 생각이라도, 그것이 끔찍하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는 것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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