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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Feb 08. 2023

실수하는 엄마, 든든한 아들

몇번 째 지하철 여행인지 모르겠다만 벌써 5번은 넘게 1호선을 타고 한강 근처를 오갔다.

어떤 날은 8살이 된 큰아들과 또 어떤 날은 5살이 된 작은 아들도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서부터 자차로 30분거리의 전철역에 도착해서 다시 1호선을 타고 40분, 거기서 또 환승해서 3-40분을 더 가는 건 꽤나 고된 일이다. 그래도 어린 둘째가 이젠 제법 지하철의 무료함을 잘 견딘다.

지하철에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관찰하고 창 밖을 구경하고 가방 속 캬라멜을 꺼내 먹기도 하고 "엄마 저 상자는 왜 글자를 다 먹어버리는거야?"같은 귀여운 질문을 전광판을 노려보며 하기도 한다.


큰 아들과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노선 공부를 종종 한다. 주로 타는 1호선에 있는 역의 이름, 각 호선의 색깔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지, 어디 역에서 환승하는지, 몇 번 출구로 나가는지 등등.

그저 대중교통의 이점을 온몸으로 체감하면 좋겠고 청소년이 되어서도 부모의 차를 얻어타고 다니느라 여기가 어디인지, 거기가 거긴지 모른 채 그저 부모의 차를 타고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지 말았으면 해서, 그리고 혼자 지하철을 이용해 마음껏 여가시간을 풍성하게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하철을 어릴 때부터 타고 다닌다고 하면 그게 지하철을 타는 이유쯤 되려나 싶다. 그냥 그 시간을 아이가 즐거워하기도 하고.


어제도 아주 오랫만에 지하철 여행에 나섰다. 4호선 이촌역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위해서 우리 셋이 또 한팀이 되어 나선 것. 이 역시 집에서부터 편도 2시간이 걸리는 고된 노동의 길이라 할 수 있지만 나는 힘든 걸 알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에 나설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설레임이 좋다.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 많은 서울을 오고가는 건 그 자체로 피로하고 중간중간 짜증도 났다가 후회도 했다가 발바닥에선 불이나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어릴 때만 느낄 수 있는 지하철 감성을 함께 느껴보고 싶달까.

지하철 하나만을 목적으로 하던 당시에는 가까운 거리를 다녀왔다가 이제는 다소 먼 거리의 박물관이나 전시회, 뮤지컬 등등 문화생활로 확장이 되어가고 있다.


둘째는 발랄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이것이 느긋한 관람인지 누가누가 빨리 보고 지나가는 쇼인지 모르게 종종걸음으로 드넓은 박물관을 점령하고 다녔다. 3층의 일본 전시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젊은 할머니께서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이시며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너무 잘하고 계신거예요. 우리 아이들 어릴 때 나도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글쎄, 우리 아들은 예술의 전당에서 코를 드르렁 골며 잔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때의 감정을, 감성을 기억하는 것 같더라구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싶어서 이 짓(?)을 하고 다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 힘이 나고 기분 좋아진다.


박물관 관람을 힘겹게 끝마친 뒤 용돈받은 걸로 프레스 주화 제작기에서 동전을 기념품으로 뽑고나서 오늘 하루 너무 좋았다며 외치는 아들들과 돌아오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4호선에서 1호선 창동역까지 오는 길에 둘째는 뻗어버렸고 그로 인해 둘째를 들쳐 업고는 1호선에 간신히 올라탔다. 그러고는 마음을 놓았고 20분 가까이 달리던 지하철이 한 역에서 멈추어 문을 열어둔 채 정차해 있었다. 열차는 다시 출발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조금 이상하다. 방향이..

우리 집 가는 방향이 아닌 것만 같았는데 그럴 리 없다 여기고 다시 마음을 놓았다. 피곤해서 긴장을 놓아버린 것일까. 갑자기 큰 아들이 "엄마, 왜 도봉역이 또 나와?" "으잉?헉!다시 서울로 가고있네?!내려야겠다! 지금은 문이 닫혀버렸으니 다음 역에서라도 내려야겠어!" 분명히 종점까지 가는 열차를 탔건만 왜 다시 오던 방향으로 돌아가는 거지.. 결국 다음 역에서 아들들의 손을 붙잡고 건너 편 역으로 달렸다.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당역도착'. 뛰자뛰어 얘들아 조금만 힘을 내자! 이번 열차를 놓치면 아빠와의 교대시간에 큰 지장이 생기는 터라, 다음 열차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가 없던 상황이라 성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셋이 뛰어가는데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못타겠네, 놓치겠네' 하며 걱정을 해주셨는데 우리는 해냈다.

그렇게 날다람쥐 마냥 가열차게 뛰어 집에가는 '올바른'열차에 올라탔다. 맨 앞 칸에 올라탔는데 기장실에서 한 여성분이 다가오시더니 아이들에게 쵸코렛 2개를 건네셨다. 우리가 뛰어오는 모습이 안쓰러웠나? 아님 챔피언같았나? 아이들 덕분에 이런 달콤함도 맛보게 되는구나. 물론 내 것 까지 주신건 아니지만 아이들과 다니다보면 이런 넉넉함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내가 기를 쓰고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는지도 모르겠다. 이 날의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건 큰 아들이 지하철을 자주 타고 다니면서 역 이름과 방향을 익힌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감사하고 뿌듯했다.

아들 또한 자신만만하고 뭐든 해낼 것 같은 엄마의 어이 없는 실수를 통해 엄마의 연약함을 보았을 것이고, 자신을 든든해하는 엄마를 보며 자존감도 조금은 상승하지 않았을런지.

평소에는 경험할 수 없는 갑작스런 상황에 맞닥들이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다시 생각하고 움직여보자." 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자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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