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지하철의 목적지는 대한역사박물관 이었다. 일찌감치 간식거리로 고구마를 삶아 큰아들과 집을 나섰다.
소요산역에서 10시10분차를 타야하는데 편의점에서 아들의 첫 교통카드를 구매하고 충전하느라 시간이 빠듯했다. 아! 요즘 너무 푹 빠진 녀석의 풍선껌까지 (2+1)사느라 몇 분이 더 지체되었는지도 모른다. 2개를 골랐더니 한개를 더준다는 아저씨의 말이 얼마나 은혜로웠을까. 역 뒷편 우리만 아는 공터 주차장에 부랴부랴 차를 대면서 "늦으면 10시40분꺼 타지 뭐" 라고 아들에게 말을 하면서도 걸음은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었다.그렇게 쉬지 않고 힘껏 달려준 아들 덕에 10시9분에 전철에 탑승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랫만에 느낀 '숨차오름'이었다. 차만 끌고 다녔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박진감과 뿌듯함!
1호선을 타고 종로3가에 내려 5호선 광화문역까지 가면서 챙겨나온 소책자를 완독할 수 있었다. 아들과 지하철 타면 좋은 점 중에 하나이다.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광화문역에 내려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교보문고에 들렀다. 교보문고 내려가는 계단 맨 아래 쪽에 뽑기를 팔고있는 할머니를 대번에 알아본 아들은 작은 숄더백에서 100원짜리,50원짜리,500원짜리를 탈탈 털어 2천원을 만들어서는 '뽑아낼 수도 없는 뽑기'를 사먹는다. 마치 이걸 먹기 위해 내가 여기 온 것이오 하는 것처럼. 거기다 대고 에미는 어린 시절 뽑기추억을 속삭여댄다. 엄마 어릴 땐 이거 하트 모양 고대로 핀 가지고 똑똑 뜯어내면 똑같은 거 하나 공짜로 받을 수 있었는데~! 허나 이미 설탕의 단 맛에 홀려버린 아들은 '진짜뽑기란 이런 것이다'라는 엄마의 팩트엔 관심도 없다.
8살 인생 처음 가 본 교보문고는 너무 커서 어디에 눈을 두고 멈춰서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그래도 서점은 늘 설레이고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내 아이들이 서점을 끼고 성장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의 목적지는 대한역사박물관이 아니었던가?아들을 위한 나들이가 은근히 엄마가 좋아하는 곳으로 옮겨지고 있었지만 뭐 어떤가.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종이접기 책 (미니카 접기)도 골랐고 뽑기까지 먹으며 서점투어를 했기에 다른 어떤 생각이 침입할 틈조차 없다. 신의 한 수이던가 뽑.기.는 정녕!
책을 둘러보던 차에 아까 지상에서 잠시 내 시선을 스쳐지나갔던 서울시티투어 버스가 떠올랐다. 아들아 우리 오늘은 박물관 말고 아까 그2층버스 타볼까? 이제 날씨도 더 더워지면 그것도 타기 힘들테고...오늘이 딱일꺼같은데..어때?흔쾌히 오케이를 날려준 아들과 함께 현장에서 티켓을 발권하고 줄을 서서 드디어 2층버스에 탑승!먼 곳에서 바라보던 버스와 직접 타 본 버스의 느낌은 좀 달랐다. 바라보던 버스가 더 멋졌고 '타보고싶은'생각이 막상 타본 후에 사라지니 그것도 좀 아쉬웠으나 아들이랑 함께하는 이 경험이 약간의 불만족을 상쇄시켜 주었다.
2층버스는 광화문역을 기점으로 서울 곳곳의 랜드마크를 지나 남산타워를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내려 서울 시내를 잠시 구경하고 다음 버스를 타고 북촌한옥마을로 향했다. 헌데 아들은 그 시점부터 조금 지쳐하고 따분해했다. '내가 가고싶은 곳만 너무 끌고 다니다시피 했나'하고 생각이 미쳤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북촌 또한 내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단 사실을 알아차리게 됐다. 아...그래서 넌 마음에 안 들었구나 하하하...엄마랑 아들은 늘 반대지... 그래도 이 곳에 내린 이상 구경은 해야지. 약간의 투덜거림을 4천원짜리 솜사탕으로 제압하자, 아들의 입에서 "그래!이게 바로 진정한 데이트지! 아~상쾌하네!엄마도 한 입 먹을래?" 소리가 터져 나온다. 4천원이 못내 아까웠던 나는 "아니!"하며 뚱한 채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북촌이 뭐라고... 그 언덕사진 하나 찍겠다고 아들을 끌고 이리 사서 고생을 하는지... 아들에게 점점 미안해진 나는 결국 2000원짜리 '5만원지폐모양의 키링'을 사서 손에 쥐어준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카드결제가 안되서 계좌이체하는 바람에 발생한 수수료500원까지 2500원인게지. 돈으로 댓가를 치러가며 올라간 북촌한옥마을의 포토존은 내가 가면 안될 곳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집 앞에서 세계방방곡곡의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인증샷을 찍고있는건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일일것만 같다. 그렇게 흡족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투어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급 피곤이 몰려왔고 아들은 빨리 지하철을 타러 가자고 했다.
나와 아들의 버스투어티켓값이 합쳐서 36,000원. 역사박물관에 갔으면 안써도 됐을 돈이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해서든 뽕을 뽑고 싶다는 미련함에 야경투어까지 하고싶었다만 집에서 걸려온 막내딸이 열이나기 시작했다는 남편의 전화가 신경쓰여 투어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집에 오는 길, 오늘 가장 재밌었던 게 뭐냐 물으니,
"5만원키링, 이거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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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중에 커서는 그 키링에 이 모든 여정도 담아줄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