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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T Jul 06. 2024

'연인엔 선물, 부모님엔 현금'...경제학으로 푼 일상

KDI 출신 박정호 경제학자의 '아주 경제적인 하루'

美법원이 '리콜 위기' GM 손 들어준 이유
임금 더 준 포드, 임금 노동생산성 동반상승
뉴욕 타임스퀘어 명소화...'공유자원' 성공例     
기회비용 관점 매몰되면 혁신기회 놓칠수도


우리는 왜 연인의 생일에는 선물을 골라 주면서, 부모님 생신에는 현금을 드릴까요?


경제학적으로 선물의 금전적 가치는 낮게 평가됩니다. 경제학자인 조엘 왈드포겔 박사가 미국 예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했을 때 어떠한 만족을 느끼는지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학생들은 해당 선물의 시장가치보다 10~33% 정도의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가령 100달러짜리 선물을 받았을 때 그 선물에서 느끼는 효용은 67~90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선물은 투자한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에 부합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현금보다 선물이 훨씬 긍정적인 신호 보내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입니다. 선물을 고르는 데 쓴 시간과 에너지는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부모님이나 오래된 배우자처럼 관계가 명확히 설정된 경우 이 같이 마음을 증명하는 신호 보낼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대신 선물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효용가치가 중요해집니다. 아직 관계가 굳게 정립되지 않은 연인에게는 '신호 보내기'에 효율적인 선물을, 관계가 명확한 부모님이나 배우자에게는 실용적인 현금을 선물하는 이유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 출신 박정호 경제학자는 우리의 일상을 경제학의 관점으로 풀어냈습니다. "경제학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학문"이라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그는 한계비용과 한계효용,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노동생산성, 비교우위론, 공공재와 공유자원 등 경제학 개념들을 얼핏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도 '이렇게 적용해 볼 수도 있구나'라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습니다.


미국 법원이 GM에 리콜을 명령하지 않고 안전캠페인 방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런 경제학적 분석을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1993년 미국의 소비자단체는 GM이 1973~1987년 생산한 픽업트럭 500만 대를 리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당시 생산된 차량들은 자동차 사고가 날 경우 가스탱크가 쉽게 폭발하게끔 설계돼 있어 150여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과 함께입니다.


당시 미국 법원은 리콜을 실시할 경우 최대 32명의 운전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500만 대를 전부 리콜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무려 1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GM은 5000만 달러를 들여 음주운전 교육을 실시하고 저소득층 20만 가구에 유아용 안전좌석을 제공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GM 측은 아동용 안전좌석 보급으로도 5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산해 제출했습니다. 법원은 GM의 타협안을 받아들입니다.


또 다른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는 임금을 높임으로써 노동생산성을 함께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포드는 1914년 그 유명한 '컨베이어벨트 생산체제'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 생산의 핵심이 분업화는 생산성 향상을 불러왔지만 생산직 근로자들은 단순 반복 작업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이는 근무 불만족이나 근무 태만으로 이어졌고 또 많은 근로자들이 이직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포드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생산직 근로자의 일급을 하루 5달러로 높여준 겁니다. 당시 경쟁 자동차 업체의 임금은 3달러 수준이었으니 업계 평균의 66%를 올려준 셈입니다. 이는 곧 경영 성과로 나타납니다. 포드가 거둔 이익은 1914년 3000만 달러에서 1916년 6000만 달러로 두배로 성장합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도입과 근로자 임금 수준 향상이 결합해 노동생산성이 급격히 올랐던 것이죠.


임금이 높아지면 근로자로서는 생산성을 높여야 할 유인이 생깁니다. 만약 저 포드 직원들이 근무태만으로 해고당할 경우 일급 5달러짜리 직장 대신 일급 3달러짜리 경쟁사로 재취업을 시도했어야 했을 겁니다. '신의 직장'이 된 포드에서 계속 근무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을 했을 겁니다. 이처럼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높였을 때 이로 인해 노동생산성도 함께 증가하는 현상을 '효율임금이론'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개념은 익히 아실 겁니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도 한때 그 사례였다고 합니다. 1980년대까지 타임스퀘어는 뉴욕의 대표적인 우범지대였다고 합니다. 대낮에도 매춘부나 강도, 소매치기가 몰려 있었다네요. 불법 총기와 마약도 거래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뉴욕시의 10년간의 노력에도 개선이 되지 않자 지역 상인들이 나섭니다. 지역의 안전과 위생 상태를 비롯해 전반적인 상권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상업지구개선사업을 시작합니다. 사업비용은 당연히 지역상인들이 갹출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여기서 '무임승차자' 현상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당시 뉴욕시 법은 상업지구개선사업 사업 동의율이 60%를 넘으면 나머지들도 해당 사업에 비용을 내도록 의무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개선사업 결과 타임스퀘어는 지금처럼 세계인의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기업 경영에 있어 꼭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원칙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은 새롭습니다. 그간 배웠던 것은 어떤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사업을 하지 않고 다른 사업을 했을 때 벌 수 있었던 이익(기회비용)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이미 투여했으며 현재로서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복구할 수 없는 매몰비용은 고려하지 말고 추가적인 경영판단을 하라고 내용입니다.


이 책에서 새로운 점은 과도하게 그런 원칙에만 집착했다가는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코닥은 기회비용을 계산하느라 디지털카메라라는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고 (한때) 몰락했습니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고, 1981년 앞으로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만든 기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필름 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있던 터라 혁신하지 못했습니다. 안정적으로 벌 수 있었던 필름 판매 수익이 컸기 때문에 과감하게 디지털카메라로 사업모델을 전환하지 못했던 것이죠. 저자는 "기회비용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출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지만, 기회비용이 큰 결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판단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라고 지적합니다.


매몰비용의 사례는 많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1980년대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왔음에도 시행된 뒤 애물단지가 되어 가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 프랑스의 초음속여객기 콩코드 등이 있습니다.


다만 '매몰비용을 무시하고 현재 기준으로 손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자'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비전이 없는 분야의 사업에서 재빨리 빠져나오지 못할 위험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본 그 사업을 계속해야 손실을 만회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없는 산업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는 "매몰비용을 배제한 의사결정은 단기간에는 손실을 줄이거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고 혁신을 추구할 기회를 지연시킬 수 있다"라고 경고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한국이 한국전쟁 이후 내수위주의 경제발전을 하라는 조언을 듣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1960년대 당시 개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라울 프레비시와 H.W. 싱거가 "개발도상국이 유의미한 발전을 하려면 수출을 통한 대외지향적인 전략보다는 국내 수요를 우선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한 주장을 했는데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때 대외수출 모델로 경제발전을 한 국가들은 경제성장 성과를 냈지만 내수 위주 경제 발전을 한 개발도상국들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풍부한 실제 사례들입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학 개념들을 어떤 가상의 상황으로만 설명한다면 독자로서는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가령 '과점시장에서의 한 회사가 다수 브랜드를 보유해 신규 기업의 진입을 막는 전략'으로서 국내 라면 시장을 예로 듭니다. 국내 라면 제조사는 농심, 삼양, 오뚜기, 팔도 등 4개사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라면 제품은 200여 개에 달합니다. 잘 팔리는 제품만 팔면 더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들이 굳이 제품을 다양화하는 데에는 신규 라면 제조업체의 등장을 막으려는 또 다른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조선일보에서도 한때 라면 사업을 했다는 것은 이번에 새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풍부한 사례화 함께 우리 일상을 경제학적으로 풀어낸 책 '아주 경제적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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