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
자신이 휴먼안드로이드임 알게 된 소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과 탐구 진행
'블레이드 러너' 'A.I’ 등 반복된 주제·전개
'행동 통한 보여주기' 아닌 '대화' 통해 서술
'가까운 미래, 통일 한국의 평양 휴먼매터스랩에서 아버지와 고양이 세 마리와 평화롭게 살던 17세 소년 철이. 미등록 휴먼안드로이드라며 정부 요원들에게 연행된 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의 플롯을 거칠게나마 짧게 쓴다면 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자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두 가지 면에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주제 자체가 이미 수십 년간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새롭다고 할 수 없으며, 그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표현 방식이 '대화'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93년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년작)이 나온 지도 벌써 20~30년이 넘었습니다. 네이버웹툰 '삼단합체 김창남'(2008년작)이 나온 지도 15년이 넘었습니다. 모두 휴먼안드로이드 등 로봇을 등장시키면서 그 안에서 인간 또는 인간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루는 작품들입니다.
'작별인사'가 연재된 시점은 2019년이고 2년간의 재탈고 끝에 단행본으로 다시 나온 시점은 2023년입니다. 왜 이 시점에 그간 발표된 작품들과 같은 주제의식과 전개방식을 또다시 반복한 것일까 의아스러웠습니다.
물론 인간이 수천 년간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뤘듯 꼭 문학작품의 주제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새로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접근법 자체까지도 이미 수차례 반복돼 왔기에 당혹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책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는 주로 작중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이뤄집니다. 주인공 철이와 철이를 개발한 천재 과학자 '아버지', 인간성을 부정당하는 복제인간 선이, 재생 휴머노이드 달마 등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이 무엇이냐는 논쟁이 이어져 갑니다. 특히 작가가 밝혔듯 선이와 달마의 대화는 윤리학자 데이비드 베너타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를 직접적으로 참고했습니다.
'주제 의식을 대화로 말하지 말라,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문학이나 영화 시나리오 작법 기초 중 하나입니다.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주제 의식을 느끼게 하는 방식이 통용됩니다.
이 책을 쓴 작가가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등을 쓴 관록의 소설가이기에 오히려 이 같은 기초적인 작법에 구애되지 않을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종의 파격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족. 아직까지도 인간과 윤리를 규정하는데 종교의 영향이 크지만, 이 소설에서 종교는 너무도 가볍게 넘겨져 버립니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듯한 '우주정신'만이 등장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