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 이코노미스트의 '홍춘욱의 최소한의 경제토픽'
신자유주의, 이제는 과거의 유물 돼
2008년 금융위기·중국몽 기점으로
미국·유럽서 반이민·반세계화 쌓여
英 EU 탈퇴·美 트럼프 당선, 21세기 출발 신호
美 IRA법·반도체법 등 자국 우선주의 강화
'자국 산업 보호' 속 한국 생존전략 생각게 해
신자유주의의 끝...자국산업보호주의의 부활
"20세기말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는 이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진정한 21세기는 자국산업보호주의로 정의된다. 영국의 EU 탈퇴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1기 당선이 그 신호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가 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은 21세기를 정의하는 그의 인사이트였습니다. 그의 21세기론을 제 방식으로 다시 풀어쓰자면 위의 문장이 될 겁니다.
당장 현실이 그렇습니다. 미국은 수조원 대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삼성전자나 TSMC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업체들에게 공장을 자국 내 설치하도록 유도하고 있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북미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하고 최종 조립된 전기자동차에만 세액공제를 주는 방식으로 자국에서 전기차 생산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자국 내 수요를 배경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전기차 시장을 선점해 왔지만 미국과 유럽의 견제에 부딪힌 상황입니다. 요즈음 중국의 부동산 침체, 청년 실업난 기사를 보면 국내 언론들이 한때 G2라며 중국을 미국과 같은 급으로 우러러봤던 것이 시기상조는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혁명 시기에 유년기를 거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중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산업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도 크다고 합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기억이 강한 한국의 청·장년 세대로서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무역개방 등이 세계의 질서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세계 경제 패러다임은 변했습니다. 더 이상 자유무역이 지상명령인 시대가 아닙니다.
경제 무역 단위는 블록화 됐고 국가 간 관세장벽을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던 때를 지난 이제 세계 각국 정부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며 자국 내 산업과 경제를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금융위기·베이징올림픽...2008년은 역사의 전환기
시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이후 10년까지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반이민과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부상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저변에는 자국 내에 쌓인 반이민, 반세계화 정서가 있습니다. 2013년 세상에 드러난 '로더럼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고 하는데요. 영국 북부 도시 로더럼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13년까지 파키스탄계 이민자들로 구성된 갱산이 지역 어린 여성 1400여 명을 조직적으로 성적으로 학대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지역 경찰과 정치인들은 인종 문제가 얽힌 이 사건에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고 하네요.
이민자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상황에서 'EU 탈퇴'를 내건 유럽독립당(UKIP)이 선전합니다. UKIP는 2015년 5월 영국 총선에서 13%의 지지율을 얻습니다.
UKIP의 대두에 위기를 느낀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보수당 총리는 최악의 수를 둡니다.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한 것이죠. 보수당 측은 '국민투표에서 EU 탈퇴 안은 부결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UKIP의 영향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 결과는 'EU 탈퇴'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캐머런 총리는 사임합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영국은 2022년까지 브렉시트가 없었던 가정 상황에 비해 경제 성장률이 6%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브렉시트 결정 후 UKIP는 2017년 5월 지방선거에서 140석 이상을 잃었다는 겁니다. UKIP가 내건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만큼 더 이상 국민들이 이 정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신자유주의 선봉자 미국, 자국 보호주의로 돌변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 1기 집권은 반이민, 반세계화의 또 다른 신호탄이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 배경에는 자유무역 와중에 러스트벨트로 대표되는 미국 철강, 자동차 산업의 쇠락이 있습니다. 지역 산업 쇠퇴로 해당 지역에 살던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추락했습니다.
2020년 미국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는 3억 3260만 명이고 구성별로 △백인 59.7% △히스패닉 18.7% △흑인 12.5% △아시아계 5.9% 순이라고 합니다. 다민족국가라고 하나 백인 비율이 여전히 과반이죠.
백인 중년 남성(45~54)의 사망률은 2000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는데 주요 사망 원인은 자살, 약물중독, 폐암, 알코올에 따른 간 손상 등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철강·자동차 산업 쇠퇴, 종교의 역할 축소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들이 펜타닐을 비롯한 마약과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트럼프는 이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줍니다. "현재의 문제는 당신들의 무능이 아니라 중국산 제품과 이민자 때문"이라는 메시지를요. 이들을 기반으로 당선된 트럼프는 2018년 대(對) 중국 관세를 종전 3%에서 22%까지 인상합니다.
조만간 있을 미국 대선 결과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이기든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승리하든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지속할 것입니다. 중남미 불법 이민자를 엄단하고 대 중국 관세를 올린 것은 트럼프였더라도 반도체법, IRA법을 추진한 것은 민주당 바이든이었으니까요.
도광양회 중국, 베이징올림픽 기점 '중국몽'으로 전환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기점인 것으로 저자는 진단합니다. 그간 '도광양회', 즉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중국의 기조는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바뀝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룬다는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중국을 미국과 같은 급으로 취급하는 'G2'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로 기억합니다.
이와 함께 같은 시기 불어닥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도 중국의 자신감을 고취시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에 신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이 이들 민주주의국가에 비해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죠.
실제로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개념도 제기됩니다. 자유무역과 정부 규제 완화를 대표하는 미국 주도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비견해 정부 주도 시장경제 발전 모델로서 중국 중심의 '베이징 컨센서스'를 내놓은 것이죠.
중국-중앙아시아-러시아-발트해로 이어지는 육상 교통망과 싱가포르와 동남아-유럽-아프리카 해상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망을 구축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이런 상황에서 진행됐습니다.
중국은 또 '제조 2025'라는 직접회로, 고급 공작기계, 첨단 선박 기술, 전기차, 바이오 등 10대 핵심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만들어 2015~2019년에만 3000억 달러를 투입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대규모 국가 주도산업 발전 정책은 주변국의 산업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줍니다. 현재 미국이 전기자동차 산업 정책에 힘을 빼는 이유 중 하나로 중국이 국가 주도로 전기차 산업을 키워 놓은 탓에 자칫 시장을 중국에 빼앗길 우려가 있다는 점이 꼽힙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인구 구성 변화
미국, 영국, 중국이라는 세계 경제 축의 변화와 함께 눈길을 끄는 내용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었습니다.
1948년 건국 당시 이스라엘은 동유럽계인 '아슈케나즈'가 주도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유대인들이 대부분 아슈케나즈라네요. 이스라엘이 혁신을 통해 IT 산업 등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아슈케나즈의 활약 덕분입니다. 가령 인텔이 이스라엘 하이파에 연구개발센터와 반도체 공장을 짓게 된 배경에는 아슈케나즈계인 도브 프로먼 부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정통파인 하레디가 점차 이스라엘 내 인구 비중을 높이 차지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평균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당 3.0명인데 하레디 집단의 경우 6.6명에 이릅니다. 하레디 여성은 평균 22세에 결혼을 한다네요.
인구수가 늘어나니 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현재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속한 리쿠드당은 100% 비례대표로 구성된 이스라엘 국회 내에서 과반 의석을 점유하지 못했지만, 유대교토라연합(UJT) 등의 하레디 정당과 연합했기 때문에 집권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가 하레디에 대해 사실상 군 면제 혜택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정치적 배경이 있습니다.
정작 본인들은 군 복무를 하지 않는 하레디가 무슬림 세력에 대해 강경 정책을 주장하고, 이들의 표로 인해 정권을 겨우 잡고 있는 집권 세력이 팔레스타인이나 주변 무슬림 국가와 무력 충돌을 반복하는 아이러니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ㅇ이스라엘 주요 집단 분류
-하레디(Haredi): 초정통파 유대교인. 삶의 모든 면에서 종교적인 가치를 가장 우선시한다.
-다티(Dati): 종교적이라는 뜻. 유대 종교법을 지키나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인다.
-마소르티(Masorti): 전통적이라는 뜻. 유대교의 원리를 따르지만 개방적인 편.
-세큘라(Secura): 세속주의 유대교 집단.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
이 책은 '자국 산업 보호주의'로 21세기를 정의하는 인사이트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현실 인식이 확립되어야만 우리나라가, 또 우리 각자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생존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