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
지금은 떠났지만 20여 년 전에 국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할 때, 주변사람들의 걱정이 늘어졌다.
상처나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 힘든 일 어디 있으랴. 열심히 하면서 능력과 실력을 입증받으면 그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있겠는가.
또 내가 가서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줍잖은 소명감으로 도전을 했다.
시간이 차차 흐를수록, 정당과 정당 간의 치열한 경쟁이 의원과 의원 간의 전투로,
의원과 의원 간의 전투가 보좌진대 보좌진의 투쟁으로
또 한 의원실 내에서도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 있었고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으며 피폐해져갔고 그들의 걱정은 틀린 것만은 아닌 상황이 되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매력적이지는 아니한, 해서 궁금하긴 하나 그닥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드는
그런 직업이 왜 그런지 알즈음, 가끔 친구들을 만나 하소연이라고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친구들은 나를 중간에 두고 정치 얘기를 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고 그냥 듣고만 있거나, 부정도 긍정도 아닌 엷은 미소나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다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놨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씁쓸하다.
그나마 정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삶이 조금은 나아진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던 이들이었지만,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던 건, 나의 자격지심이었을까.
아니면 너희들은 현장을 잘 몰라. 그런게 아니라고....나만의 세계속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시선을 고쳐줘야 한다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위로 받고 싶었는데 그들은 옳고 그른 판가름을 하고 싶어했고 나로부터 그 답을 듣고 싶어했으니깐, 그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국회의원이 아니라 소위 잘 나가는,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그들의 입과
행동에서 모든 것이 제단되어지는 현실에 대해, 니들이 보는 세상보다 훨씬 풍성한 비하인드들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어떻게 끄집어내야할지 모르겠어서 한창을 떠들다가도 그냥 빙산의 일각이야라고 말하고 침묵을 일관했던 나에 대한 답답함... 그 감정이 결국 나를 점점 친구들과 멀어지게 했었던 것 같다.
정치는 갈등을 기반으로 발전한다.
여당과 야당이 있고, 국회와 정부가 있고, 언론과 국민들이 있다.
국회로 대변되는 정치판은 늘상 시끄럽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놓고만 논쟁하면 다행인데,
국민이 보기에는 싸울 일도 아닌 일로 으르렁 대는 모습처럼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래도, 말 한마디 한 마디, 숨소리 하나하나가 결국 정당의 명운, 정권의 명운과 집결되기 때문에 시시콜콜 민감해질수밖에 없다.
그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언론에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 친구들은 죄다 사회참여의식이 높고 나름 지향하는 가치가 뚜렷한 친구들이다.
내가 국회에서 일한다고 할때, 나를 통해 그동안 청춘을 불태우며 사회를 향해 부르짖었던 가치들이 구현되리라는 희망같은 거를 품었었을 테다 (정말 어렸으니깐).
"애들아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치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그 뿐인 사람이 니들이 말하는 그 거대담론을 어떻게 만들어가겠니. 꿈들 깨라."
겉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늘상 마음이 짓눌려졌다.
국회에서 몸싸움이라도 하고 언론에 부끄러운 모습이 대서특필되는 날이면, 나 역시도 전쟁터의 중앙무대에서 그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도무지 나조차도 납득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나를 눌렀다.
그때는 절반은 앞서나가면서도 절반은 주눅들었었다.
나는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과격한 투쟁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투쟁과 갈등을 반복하면서 역사발전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그 투쟁은 철저히 콘텐츠에 기반한 논리를 갖고 싸우는 말과 펜의 투쟁이어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이렇게 처리하면 좋겠는데 ,저렇게 하자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게 되면 한없이 주눅들기 마련이다. 다수에 의한 다수의 결정이 민주주의이기에 씁쓸하거나 아닌 것 같아도 수용해야 하는 운명이다. 동의하지 못해도 우리가 반대하는 법안을 강행처리하려고 하면 몸으로라도 막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던 책무를 수행하기란 얼마나 버거웠던지.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부끄러운 사건사고들이 뉴스로 보도될 때이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곳이므로 아주 작은 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데 일상적인 사회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뇌물수수에, 각종 불법에 특권까지 누리고, 성폭행이나 성범죄와 같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다고 하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보좌진이기에 그런 자의 보좌진이어도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
기업총수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직원들이 그만두지는 않는 이치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의원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잘 되도록 도와야 하는 보좌진이 느끼는 책임감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내가 보좌를 잘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는 선배, 후배들을 보며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소주한잔 나누며 위로의 말 한마디 건낼 뿐이다.
국회의원 보좌진 2,400여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많은 일을 한다.
국회의 가장 핵심 기능중에 하나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인데, 국가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계획하고 주요 사업을 잘 추진하고 있는지, 국민생활을 안정되게 하고 있는지, 국가안보, 외교 등에 있어 성과를 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감시하고 감독하는 곳이 국회다.
정부가 국민 혈세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예산안과 결산 심사를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다.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에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통상 9월 정도)하면, 소관상임위에서 예산안 심사를 하게 된다. 국회의원 보좌진 몇 명이 어떤 한 부처와 그 산하기관 예산까지 다 보려면,
날밤을 세우지 않을수가 없다.
국정감사 역시 매우 중요하다.
평상시 상임위를 통해 정부의 업무를 평가하지만 1년 동안의 사업 전반을 평가하고 내년 사업의 방향을 모색하도록 하는 국정감사는 매우 중요한 의정활동의 핵심이다.
정기국회 시즌이 되기 전인 7,8월부터 정부가 수행한 업무에 대한 평가를 위해 아이템을 발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취합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라꾸라꾸를 가져다 놓고 숙식을 하며, 자료와 현장과 오가는 치열한 공방이 시작된다.
이밖에도 청원심사나 각종 민원 등을 처리하고, 국회 본연의 기능인 법률안을 일상적으로 처리한다. 처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하거나 개선이 필요한 법안들을 찾아내 개정하거나 제정하는 것도 국회가 해야할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다. 쟁점이 있는 법안은 관계 전문가들과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제정법의 경우에는 반드시 공청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으므로 공청회를 하기도 한다.
이런 일상적인 일들이 모두 언론 등을 통해 일일이 보도가 되지는 않는다.
그 중에 이슈가 될만하거나 정말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일들을 보도하기 마련이다.
예전에도 했었던 일들은 재탐삼탕에 불과하다.
언론이 보고, 국민이 보고, 각종 시민단체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국회를 바라본다.
주말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추석명절에도, 설연휴에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서류와 자료를 찾고 분석하고 전문가의견을 수렴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을 하느라 많은 보좌진들은 오늘도 불을 밝히며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내가 만든 정책이 누군가의 삶에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지으며, 힘들지만 한껏 부풀어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핵폭탄급 정치 이슈가 터지지 전까지 말이다. 불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어버려, '해도 소용없어'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기 마련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아? 매너리즘인가' 하고 자신의 머리통 한대 쥐어박아 정신차리게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