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국회 보좌진 양성 아카데미 같은 데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십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초롱초롱 빛나던 젊은 학생들의 눈빛과
그들을 바라보머 스친 나의 의구심..
나라일에 관심 많다면 공무원이 되는 길도 있고 입법고시를 볼 수도 있는데 왜 하필 국회 보좌진이 하고 싶은 거지?
공무원은 되기 힘든데 국회 보좌진은 인맥만 쌓으면 쉽게 될 수 있다는'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근데 착각을 한 건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 왜 국회 보좌진이 되고 싶죠?"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던진 내 질문에 그들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답변들이 흘러나왔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데 현장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정치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한다는 판단때문이었다는 확고한 포부를 밝힌 이도 있었고, 정치적인 가치와 지향점을 누군가를 매개로 실현해보고 싶다는 당찬 생각을 밝힌 이도 있었다.
내가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잠시 말을 잇지 못해 정적이 흘렀고 나를 향한 뜨거운 눈빛때문이다.
하긴 그런 마음이니 보좌진 양성 아카데미까지 등록했겠지.
강의 대상에 대한 이해를 잘못한, 한심했던 순간을 어찌 잊을까.
당시 보좌진 양성 아카데미에 온 이들은 청년들이 많았는데 국회 보좌진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공기업 취업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딱딱 정해진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푸는 느낌같다고 했다.
몇번 도전장을 내밀었던 친구들은 채용 소식이 들리지 않을 때마다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부족해서인지 늘 의문이었다고 했다. 자기소개서도 나름 고민해 잘 썼고 국회에서 인턴경험도 있어서 현실을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면 면접조차 보지 못했다고 울상이었다.
'간절하니 반드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지금은 운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런 답은 원하는게 아니라는 공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얘기들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 다음번 강의에는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내용들을 나의 첫 글에 담아본다.
흔히들 국회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친인척이거나 소위 측근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이십년 전에도 극히 드물었고, 일부 극소수 물의를 빚는 경우가 있어 지금은 법으로 친인척 채용은 아예 금지됐다.
또 측근이라고 무조건 채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 1명이 9명의 보좌직원을 채용할 수 있으니 임기동안 의정활동을 가장 잘 구현해줄 사람, 능력있는 사람을 기용한다.
안그럼 5년 뒤가 보장되지 않는다. 고르고 또 고른다.
누군가는 의원 마음에 들면 채용한다고 하나, 그 마음은 사적 욕심을 채우는 그런 마음이 아니어야 한다.
재선이나 정치적 비전을 함께 도모할 동반자를 고르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사는 일, 쉽지 않다.
불모지를 일궈낼 사람, 고난과 역경도 함께 할 사람이 된다는 건 큰 비움 뒤에 가능한 일이다.
국회 보좌진은 시험을 쳐서 뽑는 게 아니니 전문성이나 능력은 크게 요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 타당성이 없는 말이다.
보좌진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정치가 해결할 숙제를 잘 끄집어내고 해결해 낼수 있어야 한다.
순발력과 판단력, 통찰력, 거기에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판단을 하려면 정확하게 사안을 파악해야 하니 어느정도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수고, 또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서 의원한테 잘 보여 자리를 연명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래 가는 경우를 못봤다.
채용과정에서 그런 능력을 보여주는 방법은 정치의 이런 잘못된 점은 바꾸고 싶다는 가치가 뚜렷하거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문제인식을 자기소개서 등 포트폴리오에 정성껏 잘 담아서 제출하는 것이다.
모집공고를 내면 수백통, 수천통의 이력서들이 도착하는데, 그냥 학력이나 전공만을 믿고 밋밋하게 서류를 내는 경우에는 서류전형 통과는 쉽지 않다.
그러니깐 국회 보좌진으로 채용이 되려면, 우선 '왜?' 에 대한 분명한 자기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고, 정치를 하는 공간이니깐.
그 공간에서 왜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나만의 문제인식과 답이 있어야 일단 스타트 선에 설 수 있다.
국회 보좌진이 되는 경로는 '스카우트' '추천' '공개채용'으로 나눠 볼 수 있다.
1. 공개채용
먼저, 신입들이 가장 많이 두드려볼 수 있는 문이 '공개채용'이다.
공개채용은 주로 [국회 게시판- 채용공고] 란을 통해 이루어진다.
국회 채용공고 바로가기: 의원실채용 글목록 - 의원활동 - 대한민국국회 (assembly.go.kr)
국회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면 많게는 800개 이상 적게는 수십건, 조회를 한 기록을 볼 수 있다.
4급, 인턴, 8급, 9급, 입법보조원 등 다양한 직급에 걸쳐 채용이 이루어진다.
의원실 이름도 보인다. 기업으로 치면 기업의 이름과 같은 것이 의원실 이름이다.
의원이 누구냐는 입사지원을 하면서 매우 중요하다.
그 의원이 지향하는 가치나 정치철학, 정책적 행보, 전문성 등을 두루두루 보고 입사지원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각자 자신의 관심사나 역량, 경험 등에 맞춰 지원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고자하는 의원실이 어떤 의원실이냐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반영된 입사지원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내가 왜 국회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자기 답이 있어야 한다.
- 이력서 작성 시, 국회와 연관된 것은 뭐든지 기록하자. (상훈이나 연구목록 등등)
- 자기소개서 작성 시, 그 의원실이 추구하는 정치지향점이나 입법활동에 대해 기본조사를 하고 내가 어떻게
기여할 지를 충분히 드러날 수 있게 작성하는 게 좋다.
- 기타 참고자료를 너무 방대하게 늘어놓기 보다는 일목요연하게 핵심적인 사항을 추려낼 줄 알아야 한다.
* 의원실에서 채용공고를 내면 1000명이 가까운 지원자가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1차 서류 심사는 통상 보좌관들이 하는데, 우리 의원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는지, 우리가 필요한 직무에 대한 역량이나 열정을 파악하도록 서류를 작성했는지를 중점으로 본다.
2. 스카우트
'스카우트'는 주로 국회 의원실에 역량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입법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를 채용하기도 하고,
홍보를 잘 하기 위해 컨설팅 회사나 PR전문가를 채용하는 식이다.
물론 전문가를 삼고초려해 모셔온다고 해서 모두 역량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스킬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가치와 철학과 비전으로 국민정서를 이해해 현실에 잘 담아냐느냐 하는 문제여서 화려하게 덧칠만 해댄다고 역량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거꾸로 스킬을 뛰어나지만, 정치가 구현해낼 보편타당한 가치를 엮어내지 못해 무능력하다는 꼬리표를 달게 되는 전문가들도 많다.
별볼일 없어지는 이유는 정치적 언어와 매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국회 '에이스'로 정평이 난 보좌관을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부분 선거 후 새롭게 보좌진을 구성할 때 스카우트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일 잘하는 보좌진은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일할 곳을 마련해놓기도 한다.
한발 놓쳐 일하고 싶은 보좌진이 다른 의원실로 간 경우 섭섭함을 토로하는 국회의원들도 더러 있다.
3. 추천
'추천' 방식에는 전제가 있다.
실력과 능력이 입증되어야 하고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아는 사람이 소개해서? 노우다.
국회의원들은 나름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은 판검사, 언론인, 정당인, 기업인, 노동운동가, 단체, 교수, 연구기관 등 각 분야에서 평가를 받은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이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국회의원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한 두개 쯤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뭐든 간에.
가령 사람을 이끌어가는 흡인력 있는 사람은 차갑고 냉정한 국회의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강점을 지닌 것이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보좌진을 구성할 때 정책역량이 강한 인물들로 라인업을 구성한다든지,
판검사 출신이 홍보역량이 강하거나 언론감이 뛰어난 보좌관을 기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의원이 약점을 커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물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교수 출신이 죄다 석박사 출신들이나 연구기간 후배들을 보좌진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고, 정무적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이 아예 그길로 가겠다고 모든 보좌진을 정무적인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채우기도 한다.
한편 대학 졸업 후 인턴으로 국회에 들어와 상임위나 국정감사를 해보고 나면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 경우 보좌관이나 국회의원이 다른 의원실에 정식 채용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일했던 의원실에 정식채용되는 경우도 있다.
추천을 통해서 채용을 하더라도 '검증'은 거쳐야 한다. 간혹 의원이 추천한 사람의 이야기만 믿고 채용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말로만 들어서는 알 수 없다. 채용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충분히 그 사람의 역량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혹시 그냥 누가 추천해준다고 해도 과연 합당한 역량을 나 스스로 갖추고 있는지부터 자문하고 그것이 충분히 뒷받침 되었을 때 응하라고 하고 싶다. 그래야 전쟁터같은 국회에서 살아남고 그래야 보람을 찾을 수 있으니깐.
국회에서 일하는데 손쉬운 길이란 없다.
나는 좀 전문적인 역량을 키우고 난 뒤 국회에서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할 수도 있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인턴으로 들어가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업무를 해보고 싶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문적인 역량을 가진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이 죄다 국회에 와서 일을 할 수도 없다.
인턴을 하면서 차근차근 경력을 밟아가는 것 역시 국회의원이 낙선하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내가 업무적인 역량이 떨어지면 도태될 수 있다.
우선 국회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단순히 월급만 봤다가는, 1-2년을 넘기지 못하게 때려치우게 된다.
상임위가 열리거나 국정감사가 열리면 아예 간이침대 펴놓고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 하고,
평상시에도 야근을 밥먹듯 한다. 민원인의 전화에 수많은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일이라 감정적인 컨트롤도 잘 해야 하는 직업이다.
어디 그뿐인가.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로 인해 - 이는 비단 내 자리 뿐만 아니라, 의원의 지역구를 노리는 경우까지를 포함한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신문 조간의 헤드라인이 뭐가 될지를 미리 예측하고, 정부부처가 예산 운용이나 정책집행을 잘 하는지를 늘 예의주시해야 하며, 당지도부가 내린 판단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 의원에게 끊임없이 인풋을 해야 하며 지역주민이 민원을 제기하면 해결을 위해 불철주야 발로 뛰어야 하는 곳이다.
작년인가 공정위 '에이스' 서기관이 그만두고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이직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는 기사에서 "사회갈등 조정되는 끝장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용안정성이 떨어지고 연봉도 크게 상승하지 않는 국회 보좌관으로의 이직을 공정위 선배들은 말렸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스카우트가 아닌 '공개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국회 보좌관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이 일을 얼마나 열정을 다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에 대한 답과 정말 치열하게 부서지도록 사회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해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답을 내릴 수 있다면,
무수히 내민 서류 뭉치들이 그냥 종이뭉치가 아니라 희망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