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존재

-essay01

by 유연

엄마 나이 마흔을 갓 넘겼을 때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내 나이 마흔이었을 때 내 아이는 이제 갓 태어났다. 나를 돌이켜보면, 마흔도 어린나이였다.



부모는 자식만큼은 자기인생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는 늘 내게 너무 어려서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주문처럼 하셨다. 이유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너무 일찍 결혼해 좋은 시절 하고 싶은 것 다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엄마의 뜻대로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자 엄마는 빨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성화셨다. 지금 낳아도 나이 육십에 자식은 학생이라며 걱정했다. 나는 그때마다 늦게 결혼하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선 너무 늦었다고 하냐며 엄마의 모순을 지적했더랬다.


엄마 말 때문에 늦게 결혼한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닦달이 많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늦은 나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좀 더 일찍 결혼할 걸 하며 후회하면 엄마는 괜스레 뜨끔해하시기도 했다. 마치 자신 때문에 결혼을 늦게 한 것 이라고 여기는 듯 말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는 존재만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 뜬금없이 아이는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 해줘야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존중과 배려, 부모 마음대로 하면 안 되고 자식의 뜻을 존중하고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아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엄마, 그냥 부모의 존재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한 공간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된대. 안도감을 준대.”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인지 몰라도 아이 표정은 마치 그 말을 체감하는 듯 확신에 차 있었다. 내 나이 열세 살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요새 애들이 확실히 빠르구나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안도감 같은 것도 몰려왔다. 특별히 해주는 것 없는 나를 위한 위로의 말로 여겼던 것 같다.


하루 24시간에서 잠자는 시간을 빼면 16시간, 17시간 정도다. 그 중에 10시간 이상은 일터에서 보낸 시절이 있었다, 그마저도 이런저런 약속으로 고작 1-2시간 정도 가족과 함께였다. 말이 가족과 함께였지 그냥 한 공간에 머무를 뿐이었다. 주말이면 모자란 잠을 자기 바빠 대화는 거의 용건만 간단히 수준이었다. 그런 시절을 애써 멀리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물리적 시간을 많이 만들려는 내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아이의 마음을 동하게 만든 건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친정엄마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란 엄마면서 말이다.




엄마는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와도 주무시지 않는 유일한 분이었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 여겼다. 뭐라도 먹어야 한다며 꼭 먹을거리를 챙겨주셨다. 가끔 몰려드는 잠을 피할 수 없어 까무룩 잠을 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번은 아이가 시간이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아 아파트 입구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다. 그때 아이의 눈가에 퍼지던 반가움의 눈빛이라니. 대번에 매일 나와서 기다려달란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피곤하셨어도 자식의 저 눈빛 때문에 그리하셨던 건가하고.


엄마는 늘 집에 있는 존재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학교 수업이 끝나 집에 갔는데 평소와 달리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엄마가 나오질 않았다. 열쇠가 없던 나는 대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고요했다. 불안했다.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집하고 학교밖에 몰랐던 때라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몰랐다.


얼핏 엄마가 며칠 전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놀러갈게”했던 말이 생각났다. 열 발자국 건너편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나는 그 집을 서둘러 찾아갔다. 문이 열려 있었고 엄마가 그곳에 있었다. 아주머니와 신나게 수다를 떨던 엄마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순간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오르며, “엄마!” 하고 소리를 쳤다. “벌써 너 올 시간이 됐냐.”며 미안해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하루 종일 집만 지키고 있다가 한 잠깐의 외출도 나는 용납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엄청난 원망의 말을 순식간에 쏟아냈다. 무안했는지 아주머니는 들어와 수박을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너무 화가 났기에 들은 채 만 채였다.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일까? 엄마도 때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분위기 좋은 맛 집에서 잘 차려입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싶었을 거다. 집안일은 잠시 미뤄두고 여행도 가고 싶었을 테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면 엄마 나이 서른다섯 무렵이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 무렵을 생각하면 엄마는 너무 가혹한 삶을 사셨다. 너무 빨리 엄마가 되어 딸과 아들들을 키우느라 헌신했다. 외출이라고는 가끔 가족과 함께 주말에 나들이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이제라도 엄마가 자식들에게서 자유로워져 자신만의 일상을 만들어가길 바라지만, 엄마는 나이가 들었다. 지금도 엄마는 명절이나 되어야 찾아오는 자식들을 위해 집안을 정리하고 계신다. 대학에 들어가도 남았을 나이에 십대에 불과한 손주들을 보며, 나이 오십이 넘어 어린 자식을 키우는 당신의 자식을 보며 걱정이 늘어진다.


아이가 또 까무룩 잠든 내게 왜 자냐고 서운해한다. 나이 먹어서 그런거라며 이해하라고 던진다. 체력을 키우라는 아이를 보며 피씩 웃었다. 엄마가 떠올라 한없이 고마워지고 마음이 아파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