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커플팰리스' 찍는 남자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참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여자 주인공이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몰래 썼던 연애편지가 발송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그린다.
생각만으로도 아슬아슬 간질거린다.
나도 한 번 해볼까 한다.
일명 ‘내가 소개팅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랄까.
소개팅 중 차마 다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던 이야기들.
상대방과 주선자를 배려하느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내 진짜 속마음을 이제 풀어놓는다.
모든 소개팅을 다 풀기엔 케이스가 너무 많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관계로,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자리 잡은 Top 3 소개팅 에피소드를 뽑아보고자 한다.
뚜-둥!
나는 선을 보지 않는다.
결혼을 전제로 여러 조건들을 노골적으로 펼쳐놓고 만나는 것에는 조금 거부감이 든다.
그에 반해, 친구들이 해주는 소개팅은 부담이 덜하고 가벼운 편이다.
그러나 어디든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한 번은 소개팅하는 내내 마치 내가 상대방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는지 아닌지 면접을 보는 듯한 묘한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요리는 잘하세요?”
“결혼하고 일은 계속하실 건가요?”
“자녀에 대한 생각은 있으신가요?”
그래, 이 정도 질문까지만 해도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남녀라면 오갈 수 있는 통상적인 대화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소개팅 역사상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 나에게 던져졌다.
“혹시 잔병치레 같은 건 잘 안 하세요?”
엥? 이건 무슨 의도지?
내가 장난으로 “혹시 제가 아파 보이나요? 하하” 하고 웃으며 넘겼지만, 상대는 꽤나 진지했다.
나도 건강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첫 소개팅에서 이런 질문은 조금 실례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싸함의 절정을 찍는 질문이 이어졌다.
“혹시 뭐 타고 오셨어요? 집에 갈 때는 어떻게 가시나요?”
나는 집까지 태워다 주려고 배려해 주시는 줄 알고,
“괜찮아요. 제 차로 운전해서 왔어요.”
그런데 돌아온 질문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 차가 어떤 거예요? 저는 K5요.”
의도가 뭐지? 본인 차 모델을 말했으니 내 차 모델을 말하라는 건가?
“저는 준중형이요.”
나는 절대 순순히 말해주지 않겠다!
순간 나는 Mnet ‘커플팰리스’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한 줄 알았다.
결혼은 현실적인 조건과 여건을 따지게 마련이지만, 대화 중간중간 내비치는 노골적인 욕망은 첫 소개팅 자리에서는 무례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소개팅남에게
조건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먼저 알아보는 질문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잔병치레 같은 거 안 해요! 저는 큰 병치레 했어요. 암이요! 물론 지금은 다 나아서 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덕분에 조건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제 인연이 아니어서 감사해요.
당신은 탈락입니다.
아직 나의 인연은 이븐하게 무르익지 않았나 보다.
그럼 다음 Top 2 소개팅 남 얘기로 돌아올 때까지
Stay tu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