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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m Aug 05. 2021

행복은 가불 하는 거였어



 행복의 이자는




 행복, 너무 흔한 단어라 행복이라고 들어도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는 말이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말하고 써서 이 세상엔 넘치는 행복들이 발에 차일 것만 같은데 가끔은 눈 씻고 찾아도 유니콘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불과 일이 년 전까진 매일 그런 생각을 했었다. 심지어 행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무서웠다. 서른 해 가까이 살며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착취당하며 나는 마음이 가난해졌고 대체로 행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특히 무서웠다. 인생 총량의 법칙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치 내가 살며 가질 수 있는 행복이 정해져 있기에  만약 내가 행복을 끌어다 써버린다면 몇 개 있지 않은 나의 행복이 앞으로 살면서 더 이상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일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산만큼은 더 살아야 하기에 지금은 행복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고 불행에 익숙해지기를 선택했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고통 속에 사는 것을 택했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행복을 최대한 미뤄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든 행복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안돼’라고 참 오래도 나를 방치했다. 몇 해를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각종 인터뷰나 SNS에서 서로에게 묻고 답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당신의 행복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다들 각자의 소확행을 공유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다. 나는 물끄러미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구경했다. 사람들의 대답은 정말로 소소한 것들이었다. 주말에 드라마 몰아보기, 퇴근 후 맥주 한잔, 나를 위한 작은 소비,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들으며 걷기 같은 정말로 별거 아닌 것들, 고작 저거로 행복하다고? 나는 저것도 못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인가, 다들 저걸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인가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버는 족족 병원비로 다 써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여행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서? 그럼에도 프리랜서를 고집해서? 아버지가 암환자여서? 정답이 없는 의문들이 제자리걸음을 했다.



 아버지가 아프고 얼마 있지 않아 나에게 메니에르병이 생겼다. 관리하면 되는 난치병이지만 그때는 크게 좌절했다. 아주 희귀병은 아니어도 흔한 병은 아니었고 어지러워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세상이 자꾸 빙글빙글 돌아 뭘 먹는 것도 힘들어 자주 게워냈다. 쉽게 피곤해져 일을 하기도 힘들었고 이명이 하루 종일 들려 종일 이어폰을 꽂고 생활했다. 갑자기 쇼크가 오니 일을 하는 것도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이 생기고 첫 두세 달 동안 약을 바꿔가며 나에게 맞는 약을 찾고 일주일에 세 군데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상태가 조금은 호전이 되어가고 병원 방문 주기가 일주에서 이주 정도로 늘어났을 때,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도 종일 따라다니는 이명도 유독 옅은 날이었다. 행복했다. 얼마 만에 머리가 아프지 않은 아침인지 무엇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날이었다.



 이후로도 나의 컨디션은 랜덤박스처럼 어느 날은 맑은 날이었고 어느 날은 흐린 날이았다. 멋대로 요동치는 컨디션이지만 올라간 컨디션을 오래 붙잡기 위해 더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히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삶에 더 집중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하루하루를 정성 들여 매일 아프지 않은 아침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어제의 행복을 오늘로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몸이 기분을 따라오지 못해 자주 낙심하는 나에게 몸과 기분의 컨디션이 같은 날은 행복이자 행운이 되었다. 아프지 않아 얼굴이 붓지 않고 머리가 맑은 날은 놓치고 싶지 않은 하루가 되었다. 그런 날을 만나면 혼자 뭐라도 하기 위해 예쁜 옷을 입고 정성 들여 메이크업을 하고 집 밖을 나섰다. 보통 전시회를 가고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걸었다. 전시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어느 날 버스에서 반짝이는 한강을 바라보다가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확행, 별거 아니네 속으로 대상 없이 으스댔다. 시원한 밤공기가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그렇게 두려웠던 행복을 매일 끌어다 쓰며 깨달았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행복은, 가불 하는 거였다. 오늘의 행복을 미뤄도 내일의 행복이 커지진 않는다. 행복은 크고 작음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발견이었다. 발견당하지 못한 행복은 소멸할 뿐이다. 지금껏 함부로 버리고 외면했던 나의 행복들에게 미안해졌다. 내일의 행복을 빌린다고 한들 행복의 이자는 행복일 뿐이고 불행은 행복으로 갚으면 된다. 각자의 소명은 전부 다르지만 모든 꼭짓점에는 행복이 있다. 삶은 높고 높이 서있는 삼각형이 아니라 넓고 넓게 누워진 삼각형이었다. 나의 속도에 맞게 행복을 발견하며 걷다 보면 반대편 꼭짓점에서 출발한 소명과 맞닿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행복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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