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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m Jul 27. 2021

30대중에 제일 애기잖아



 서른, 미움받는 착한 나이

 


 나는 올해 서른 하고도 두 살을 더 먹었다. 궁색하게 말하면 빠른 년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90년생의 삶을 살았기에 한 번도 나이를 깎아서 말한 적은 없다. 그거 한 살 덜 먹는다고 뭐 달라지나 라는 생각이었는데 29살의 겨울이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어딘가 얄팍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빠른 년생들이 몇몇 있는데 그들이 언젠가부터 자신을 소개할 때 한 살씩 낮춰 말하는 것을 본 후부터였다. 함께 있던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왜? 맞잖아”라며 되려 되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기에 대충 끄덕이고 넘기기는 했지만 다들 온몸으로 발버둥을 쳐서 30대를 막아 내는 것을 보며 여전히 이해는 할 수 없었고 약간의 조급함은 전염이 되었다.


 

 결혼을 이미  친구는 남편이 바빠 서른이 되는 한해의 마지막 날에 혼자 있다 서러워져 울었다고도 했고 다른 빠른 년생 친구는 자신은 아직 20대라며 선을 그었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대체 서른이 무엇이길래 다들 이렇게 싫어하지? 저렇게 까지 울고 부정할 정도로 싫은 일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른이 되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세상이라도 뒤집어질 것처럼 부정했지만 시간은 시간일 뿐이었다. 게으른 사람은 여전히 게으르고 바쁜 사람은 여전히 바빴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철이 든다거나 노약자석에 앉게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사실 서른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그냥 막연히 그랬다. 무력한 10대가 싫었고 뭘 해도 어설플수밖에 없는 20대가 싫었다. 20대 중반에 들어서자 그 감정은 더 해졌다. 이상한 고집이 생기고 사회생활 좀 했다고 어른인 척하는 주변인들이 불편해졌다. 스스로 돈을 벌어 쓰는 완벽한 소비자의 입장이 되기 시작하니 오래 알던 사람들도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금액에 비해 과한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던가 판매자에게 예민하게 굴며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모습들이었다. 꼭 이렇게 일하시면 안 돼요 하는 잘난 체를 해야 현명한 소비자라고 아는듯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쓸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가 보다 라고 자주 생각했다. 아직 20대라서, 사회생활을 길게 해보지 않아서, 우린 결국 공급자와 수요자의 역할을 번갈아가며 산다는 걸 알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둔하고 혼란스러운 20대가 더 싫어졌었다.



 그렇게 나이라는 것에 이상한 감정을 가지고 서른이 되었다. 몇 살이냐는 물음에 “저 스물아홉.. 아! 이제 서른이요”라고 대답하는 내 나이가 익숙하지 않은 새해였다. 그날도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었고 틈틈이 빈 시간이 있어 사담을 했다. 어려 보였던 모델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다. 나보다 세 살은 어려보였어서 언니라는 호칭을 생각만 해도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도 나보다 연장자라는 생각이 드니 나도 모르게 서른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 저는 진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주변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니까 신경이 쓰이기는 하더라고요. 다른 것보다 집도 없고 차도 없으니까..특히 경제적인 게 가끔 창피하기도 해요.”



 나의 솔직한 생각을 들은 그녀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게 왜요? 나도 집 없고 차 없어요. 서른이 뭐 어때서, 30대중에 제일 애기잖아. 아직 애기야



 ‘애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그녀에게 애기 취급을 받은 미묘한 기분과 너무 오랜만에 들어 본 호칭에 낯부끄러움이 뒤섞였다. 그리고는 곧 괜찮아졌다. 서른, 괜찮은 거네. 나 아직 애기잖아? 하는 안도감과 위로가 나를 토닥였다. 사실 나는 그저 괜찮다는 그 한마디가 필요했다. 내 생각에 긍정의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이제 서른인데 결혼 생각 없냐는 말 말고 벌써 서른인데 차도 없냐는 말 말고 너는 아직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이 남았다는 말 말이다. 어쩌면 나도 서른에 대해 이상한 편견이 있었던것 같다. 서른이면 갖춰야 할 경제력이나 서른의 얼굴 같은 것 말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의 말에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20대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들은 30대가 되니 더 진상을 편하게 부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미성숙을 즐기고 간접경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착각하고 나이 하나로 어른인 척 생색을 내는 일명 ‘젊은 꼰대’가 되어갔다. 미성숙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요즘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린다. 내가 그때에는 싫어했던 20대 중후반의 친구들이다. 젊은 꼰대가 되어버린 30대보다 훨씬 말이 잘 통하고 배울 것이 많다. 배울 점 또한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서른을 넘어 서른둘,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안 해본 것도 많다. 아직도 세상이 궁금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30년을 살며 배우고 익힌 것도 많다. 이거야말로 요즘 말하는 경력직 신입이 아닌가 생각하며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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