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던 펜을 다시 들게 한 결핍의 힘

나만이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by 해그해그


멈춰있던 펜을 다시 들게 한 것은 '결핍'이었다. 무언가 가득 차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문장들이,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갈증의 시간에 비로소 선명해졌다. 그 갈증의 끝에서 나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가끔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이들의 사소한 몸짓이나 찰나의 눈빛 속에서 나의 유년기가 파노라마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장난감을 놓치고 당황할 때, 혹은 설명하기 힘든 슬픔에 잠겨 입술을 달싹일 때, 나는 현재의 거실이 아닌 30년 전 그 낡은 방으로 강제 송환되곤 한다.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외로웠던가. 그때의 나는 얼마나 간절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던가.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들은 아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너무도 생생한 유채화가 되어 돌아온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서 나오지 못한 채, 그때의 나를 투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의 마음이 나의 과거와 겹쳐질 때,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나임에도 정작 손은 쉽게 나가지 않는다. 머리로는 "안아줘야지"라고 말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그것은 일종의 거부 반응이다. 아이의 연약함을 보듬는 순간, 내가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연약함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그 시절 보듬어지지 못했기에, 보듬어주는 법을 망각해 버린 것은 아닐까. 아이의 슬픔 속에서 나의 결핍을 발견하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나는 때로 공감 대신 외면이라는 방패를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밤, 울다 지쳐 잠든 아이의 속눈썹을 바라보다 문득 한 문장이 가슴을 쳤다.


"나만이 어린아이가 아닌데."


이 짧은 자각은 나를 짓누르던 죄책감을 걷어내 주었다. 내 눈앞의 아이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지만, 내 안에서 여전히 소리 죽여 울고 있는 '그 시절의 나' 또한 한 명의 어린아이였다.


두 명의 아이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온전히 품지 못했던 것은 내가 나쁜 부모여서가 아니라, 내 안의 아이가 아직 충분히 위로받지 못해 질투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멈춰있던 펜을 들어 글을 쓴다. 이 글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뒤늦은 답장이다.


아이의 행동에서 파노라마가 흐를 때,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 필름 속에 잠시 멈춰 서서 아이를 안아준다. 내가 아이를 안아줄 때, 사실 내 안의 작은 나도 그 품에 함께 안긴다. 아이에게 건네는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은 시공간을 넘어 30년 전의 나에게도 닿는다.


결핍은 나를 멈추게 했지만, 그 결핍을 인정하는 순간 펜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만이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유년기를 치유하는 시작점이었다.


오늘도 나는 아이라는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그 거울 너머에서 여전히 성장을 기다리는 나를 향해 나직이 속삭인다. 이제는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아이의 눈동자에

해묵은 파노라마가 산다

작은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먼지 쌓인 내 방의 시계가 다시 돌고

잊힌 줄 알았던 그 소녀가 담장 위로 고개를 내민다


아이의 서툰 울음소리는

내가 삼켰던 비명들의 메아리

그 마음을 알기에 오히려 손이 먼저 닿지 않는다


부서지기 쉬운 거울을 마주하듯

나의 약함이 거기 서 있어서

하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울고 있는 것은 아이의 뒤에 선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여전히 젖은 눈으로 나를 본다


얼어붙은 시간의 매듭을 푼다

아이를 안는 팔은 과거의 나까지 닿고

내어주는 온기는 두 개의 유년기를 동시에 데운다


이제야 펜을 든다

나를 울게 했던 그 결핍의 힘으로

아이가 흘린 눈물 위에

내가 받지 못했던 문장들을 적는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과거에서 걸어

나와 하나의 햇살 아래 나란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