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내가 아직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중고서점에서 내 책을 구입했다. 최근 세 번째 책이 나오자 앞서 나왔던 책들이 주변분들로부터 회자되었다.
이번 치즈책을 구입하면서 예전 “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 “ 책을 중고로 구입했다거나, ”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 “ 는 못 구했다거나 등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두 책이 모두 출간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동시에 나도 중고로 몇 권 사 둬야겠단 생각이 급하게 들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중고조차 못 구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선 이유였다.
내 책을 그것도 중고로 구입하는 것이 참 낯설고 이상했다.
온라인 중고 서점의 주문서에는 주문을 확인하는 문구와 함께 -글쓴이 이민희. 주문자 이민희.-라고 쓰여 있었다.
yes24 중고 서점들에서 고작 하루 이틀 상간으로 치즈책과 파스타책 두 권이 도착했다.
치즈책은 8쇄, 파스타책은 4쇄에서 멈춰서 과연 몇 번째 책이 오려나 은근 궁금했는데 이상하게도 도착한 세 권이 모두 1쇄였다.
어떻게 2007년과 2009년의 책들이 이렇게나 깨끗하게 남아 있는지. 물론 색바람과 약간의 손상은 있었지만 구하기도 힘든 1쇄의 책들을 다시 만나니 주문해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 서점에 내 책을 받으니 오랜 시간 찾고 있었던 그때의 내 시간들이, 노력들이 빛바랜 책에서 느껴졌다.
그땐 앞이 보이지도 않았던 일에 어찌 이리도 달려들었는지. 집에서 가끔 예전의 책을 들춰볼 때면 내가 이랬지, 과거에 이렇게 열심이었지 라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았다. 지금의 나와 너무 달라서 부럽기도 낯설기도 했다.
때문에 기억들을 일부러 멀리 떨어뜨려 놓았었는데 이번 치즈 cheese 책을 출간하고 보니 다행히도 아쉬웠던 오래 전의 내가 아직은 남아 있었다.
책을 내면 무언가를 해냈으니 나의 앞으로 계획을 물어오곤 한다.
예전에는 이제 무엇을 해 보고 싶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큰 포부는 아니더라도 또 다른 곳으로 떠난다거나 더 깊게 무엇을 찾는다거나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말한다. 그저 어렵게 십여 년을 지킨 원고가 책으로 완성이 되어서 일이 끝난 것이며, 살아온 날의 반을 치즈에 쏟아부었으니 그저 앞으로도 치즈와 함께 보내기만 하면 될 것이라 했다. 즐겁게 이렇게 지내기만 해도 된다고 말이다.
지금의 비비드한 노란 새책이 색이 바랠 때까지 치즈가 나랑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