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사람들에게 선 긋는 법
"요즘 살 좀 빠진 것 같은데?"
"남자(여자)친구 있어? 그 사람 직업은 뭐야?""그나저나 언제 결혼할꺼야? 애 낳으려면 지금도 너무 늦은 거 아니야?"
"OO대리, 부모님은 뭐 하셔? 퇴직하셨나?"
회사 선배나 임원 중 웃으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본인은 애정과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40대에 결혼했는데 결혼 시기에 대한 (지는 걱정이라고 하지만 내 기준엔 무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런 무례한 질문을 받으면서 나는 '이게 도대체 왜 궁금하지? 내가 자기들 애들 반에서 몇 등이나 하는지, 왜 그 대학 밖에 못갔는지 물어보면 기분이 좋은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이렇게 회사에는 선을 쎄게 넘는 사람들이 많다.
블라인드에서 이런 글을 봤다.
"회사 선배가 자꾸 사생활 물어본다. 남자친구 있냐 집이 어디냐 부모님 직업이 뭐냐. 대답 안 하면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 하네요. 관심 있어서 물어보는 건데 ㅋㅋ 라면서. 진짜 개짜증 납니다."
"선 넘는 사람들은 자기가 선 넘는 줄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건데~ 이 말 개짜증"
"나도 회사에서 살 빠졌네, 쪘네. 이런 소리 들으면 기분 진짜 나쁘더라구요."
리멤버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회의 시간에 맨날 5분씩 늦는 선배. 본인은 정시에 온다고 생각함. 2시 회의인데 2시 5분에 와서 2시 10분에 시작하는데 2시에 회의했다고 '자기최면'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6회에서 업무 거절하는 법을 배웠고, 7회에서 부탁과 거절의 커뮤니케이션을 배웠다.
"그럼 이제 다 배운 거 아니에요?"
아니다.
6~7회는 '일'에 대한 거절이었다.
이번 8회는 '사람'에 대한 대응이다.
6~7회: "이 업무는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8회: "이 질문은 저한테 하실 질문이 아닌 것 같아요"
일은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특히 "애정이 있어서", "관심이 있어서", "궁금해서"라는 방패막이를 들고 오는 사람들. 우짜면 좋노?
"언제 결혼해?" "애는 언제 낳아?" "부모님은 뭐 하셔?" "월급 얼마 받아?" "이번 인사고과 뭐 나왔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는 관심과 애정"으로 물어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건데~" "궁금해서 그런 건데 왜 그걸 삐딱하게 듣냐"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있었다.
"회사 선배가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봅니다. 귀찮아서 없다고 했더니 왜 안 사귀냐고 물어보네요. 그러더니 남자 보는 눈이 높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남자 보는 조건은 뭐냐고 물어보구요. 대체 왜 궁금한 걸까요?"
5분, 10분씩 늦는 사람, 어디에서나 꼭 있다. (난 사실 매번 약속에 늦는 고등학교 친구와 절연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일단 본인이 늦는다는 자각이 없다.
2시 회의인데 2시 5분에 와서 2시 10분에 시작해도, 본인은 "2시에 회의 시작했다"고 믿는다.
남의 시간을 본인이 맡겨놓은 것 마냥 당연하게 시간을 요구하는 사람.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 그 잠깐이 2-3시간 쯤 된다고 생각한다
"빨리 끝날 거야" → 1시간은 빨리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이 팀장이나 조직책임자가 되면 구성원들은 개고생을 하게 된다. OO시에 회의하자고 해놓고 5분, 10분 늦는 것은 기본이고 구성원을 30분, 1시간을 기다리게 한다. 퇴근 시간 무렵에도 이러는 사람도 있다.
조금 친해지면 반말하는 사람도 있다.
"야 너 그거 알아?" "에이 뭐 어때~"
얼평 등 외모 평가하는 사람.
"요즘 살 많이 빠졌네?" "피부 안 좋네. 무슨 일 있어?"
신체 접촉하는 사람도 있다.
어깨 툭툭 치기, 팔 잡기, 등 두드리기 등등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조금 친해졌다고 갑자기 반말하는 선배가 있어서, '왜 반말하시냐'고 얘기했더니 '에이 내가 언제 반말했어~' 라고 또 반말로 대답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할까"를 고민한다.
근데 질문이 무례하면, 질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서 대응해보자.
실전 대화 예시이다. (물론 선배의 대답조차 이상적일지 모른다)
선배: 언제 결혼해?
나: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선배: 뭐?
나: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선배님은 제 결혼 계획이 궁금하신 이유가 있어요?
선배: 왜 기분 나빠? 그냥 관심이 있어서 묻는 거지.
나: (손사래치며) 아뇨아뇨 절대 그런 거 아니고요. 저는 사실 남의 사생활에 큰 관심이 없어 가지고, 물으시는 분들 보면 궁금하더라고요. 왜 궁금한지도 궁금하고요.
만약 상대가 발끈하거나 화를 낸다면:
"아니 궁금하면 좀 물을 수도 있지.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지. 기분 나쁘면 다음부턴 안 물어볼께요."
핵심:
그 질문이 얼마나 이상하고 이례적이고, 신기한지 인식시켜 줘야 한다.
지금 그 질문 이상한데요. 별로인데요. 너무 궁금해서 묻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별로인데요. 등등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선배가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왜 궁금하세요? 했더니 그냥 궁금해서~ 라길래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그게 왜 궁금하신 거예요? 했더니 약간 당황해 하면서 그 다음부터 안 물어보더라...ㅋㅋ"
5분, 10분씩 늦는 사람 대처법:
2시 회의를 잡을 때, 3시 종료를 미리 공지한다.
그리고 그(그녀)가 늦으면 이렇게 말한다.
"3시에 종료하기로 했는데 10분 늦으셔서 50분 밖에 없네요. 빨리 가봅시다."
왜 늦냐고 추궁하는 것보다, 인과를 두고 건조하게 말하는 것이 서로 감정적으로 소모되지 않으면서 지각 사실을 주지시키기 좋다.
남의 시간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 대처법이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 "30분 정도는 가능합니다.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회의 좀 하자" → "제가 다른 회의가 있어서 말씀하신 회의는 몇 시에 종료될까요?"
"이거 좀 봐줄래?" →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신가요?"
이 방법이 좋은 이유:
첫째, 내가 시간 관념에 정확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린다.
둘째, 시간을 과도하게 쓸 때 감정적으로 대화하지 않고도 정리하기 쉽다.
"10분 더 필요하신 것 같은데, 제가 3시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 내일 이어서 하시는 게 어떨까요?"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회의 시작할 때 종료 시간을 먼저 말하니까 효과 좋은 것 같다. 잡담하려고 하면 OO시까지 종료하기로 했는데요 하면서 끊을 수 있음."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도 있었다.
"면접이어도 늦었겠냐는 말이 있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거지. 깐깐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그게 낫다."
영어 표현 중에 "Listen to yourself"라는 말이 있다.
"뭔 헛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같은 의미인데, "방금 니가 한 말 니가 들어봐"에서 출발한다.
선 넘는 사람들 대처할 때 공통점: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짚어줘야 한다.
반말하는 사람:
선배: 야 너 그거 알아? 나: 반말을 하시네요. 선배: 에이 내가 언제 반말했어~ 나: 방금 또 반말을 하시네요.
신기한 건, 반말을 하는 사람 중 일부는 반말을 한다는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분명 자기가 한 말인데, 타인의 입을 통해 들으면 문제점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외모 평가하는 사람:
선배: 요즘 살 많이 빠졌네? 나: 살 얘기를 하시네요.
선배: 피부 안 좋네. 무슨 일 있어? 나: 외모 평가를 하시네요.
성적인 농담하는 사람:
선배: (성적인 농담) 나: 성적인 농담을 하시네요.
신체 접촉하는 사람:
말보다는 몸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게 빠르다.
깜짝 놀라서 움찔하는 리액션
확 멀어지기
손으로 막기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어차피 신체적인 터치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예민하다. 이러나 저러나 예민한 사람이 되기 쉬우므로, 몸으로 말하는 예민보스가 되어보자.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있었다.
"선배가 어깨 툭툭 치길래 움찔했더니 미안 미안 하면서 안 하더라. 불편한 걸 표현 안 하면 계속 함"
다소 날이 선 대응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너무 예민한 거 아냐?" "관계 나빠지면 어떡하지?"
근데 생각해보자.
영원히, 아니 내가 퇴사할 때까지 참을 수 없다면 언젠가는 선을 그어야 한다.
선을 기어이 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매정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을 긋는 행위는 우리가 서로 참을 수 없는 점을 공유하고 서로가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다정한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과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당신이 나에게 실수하게 두고 싶지 않다."
이렇게 건네는 노력이다.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처음엔 선 긋기가 미안했는데 안 그으면 계속 넘어온다. 참을 인(忍) 세 개면 호구가 된다. 참지 말자. 처음 한 번 확실하게 선 그으니까 그 다음부터 편해지더라."
선배: 남자친구 있어?
나: 왜 궁금하세요?
선배: 그냥 궁금해서. 관심 있어서 물어보는 거지.
나: 아 그렇구나. 근데 저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어가지고, 궁금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선배: ...
나: 2시 회의인데 3시에 종료하기로 하죠.
(2시 10분에 선배 도착)
나: 3시 종료하기로 했는데 10분 늦으셔서 50분밖에 없네요. 빨리 시작하죠.
선배: 야 너 그거 했어?
나: 선배님. 그런데 왜 반말을 하시죠?
선배: 에이 언제 내가 반말했어~
나: 방금 또 하셨어요.
선배: ...
선배: 요즘 살 빠진 것 같은데?
나: 선배님. 외모 말씀하시는 건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선배: 그냥 건강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나: 감사한데 외모 평가는 조금 불편하네요.
6~7회에서 일을 거절하는 법을 배웠다.
8회에서 사람에게 선 긋는 법을 배웠다.
사생활 캐묻는 사람 → 그 질문 자체를 질문하라
시간 함부로 쓰는 사람 → 종료 시점을 고지하라
편해졌다고 선 넘는 사람 → 그 행동을 짚어주라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고, 참을 인(忍) 세 개면 호구가 된다.
스스로의 정신적 건강과 관계 개선을 위해, 용기를 내어 선을 그어보자.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처음이 어렵지 반복은 쉽다.
다음 9회에서는 "유형별 빌런 대처 방법"을 다룰 예정이다. 바운더리 침범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Point]
1) 6~7회는 '일' 거절, 8회는 '사람' 대응. 일은 거절할 수 있는데 사람은 어떻게 선을 그을까?
2) 사생활 캐묻는 사람에게는 "그 질문 자체를 질문하라". "그게 왜 궁금하세요?"
3) 시간 함부로 쓰는 사람에게는 "종료 시점을 고지하라". "3시 종료하기로 했는데 5분 늦으셔서..."
4) 편해졌다고 선 넘는 사람에게는 "그 행동을 짚어주라". "반말을 하시네요", "외모 얘기를 하시네요"
5) 참을 인(忍) 세 개면 호구가 된다. 처음이 어렵지 반복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