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한 명의 호불호에 내 커리어를 베팅하지 않는 법
온보딩 기간에 커피챗을 신청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들이 나를 찾은 이유는 내가 온보딩과 연계된 경력사원과정을 담당하기도 했고, 그들과는 다른 회사 소속의 선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심리적 안전감이 발동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중 열 명 중 세 명 정도는 "팀장님이 왠지 저를 싫어하는 것 같다."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들의 표정은 대개 비슷하다. 억울함과 막막함, 그리고 '내가 혹시 뭘 잘못했나', '퇴사해야 하나'하는 복잡미묘한 표정....
어느 날은 한 경력 입사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핸드폰 메모 어플을 보여줬다. 거기엔 날짜별로 팀장의 '범죄 사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ㅋㅋㅋ 제일 처음에는 신고(?)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아니었다.
"4월 12일, 전체 회의 때 내 의견만 무시하고 넘어감. 4월 15일, 점심 약속 제안했으나 단칼에 거절하고 다른 팀원이랑 밥 먹으러 감. 4월 18일,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인사 안 받음. 4월 22일..."
그는 팀장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명확한 증거를 수집 중이었다. "이 정도면 확실한 거 아닌가요?"라고 묻는 그의 눈빛은 간절했다. 차라리 내가 "맞아요, 팀장이 나쁘네요"라고 확증 편향을 찍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HR Field에서 20년을 구르며 배운 게 있다면, 관계의 진실은 대개 그 '확신' 너머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입사 5년 차 쯤인가, 새로운 프로젝트 팀으로 입사 동기와 함께 발령 받았는데, 새로 만난 팀장은 나에게만 유독 '냉동실' 같았다. 내 동기나 다른 팀원에게는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의견달라"며 미소 짓던 사람이, 나에게는 무심하게 서류를 던지며 "이거 내일까지 정리해서 보자!" 한마디가 끝이었다. 회의 때도 내 의견 뒤엔 늘 차가운 '음....' 소리만 감돌았다. 좋다 싫다 말이 없었다.
팀장의 듣기 싫은 '음,,,' 한마디에 나는 밤잠을 설쳤다. '내가 경력직이라 견제하나?', '내 말투가 마음에 안 드나?' 온갖 소설을 쓰며 6개월을 보냈던 것 같다. 출근길 통근 버스 안에서 팀장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체기가 올라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허망했다. 그 팀장은 원래 낯가림이 심했고, 새로 온 사람에게는 최소 6개월의 '관찰 기간'을 두는 습성이 있었다. 나에게만 차가웠던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아직 자신의 '신뢰 바운더리' 안에 넣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속에서 팀장을 거대한 괴물로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그 기간은 나에게 너무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나에게 커피챗을 신청하고 메모 어플을 보여준 그에게 나는 감정을 빼고 '숫자'를 보자고 제안했다.
"팀장님이 회의 때 누구 말을 가장 많이, 길게 듣는지 딱 일주일만 카운팅 해보자."
일주일 후, 그는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세어봤는데, 김책임님이 12번으로 제일 많았어요. 저는 2번이었고요." "김책임님은 그 팀에 얼마나 있었어요?" "5년은 넘었을껄요." "OO선임님은요?" "...이제 뭐 4개월?"
그와 나 사이에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1년 반 된 이선임은 7번이었다. 패턴은 명확했다. 팀장은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 조직에서의 '경험치'와 '맥락'을 이해하는 순서대로 귀를 열고 있었던 거다. 이건 미움이 아니라 '절차'의 문제였다. 그는 자신이 수집했던 그 수많은 증거들이 사실은 '신입의 서러움'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정말로 '미움'이 실존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과장 시절이 그랬던 것 같다. 연말에 새로 부임한 A 상무님은 전형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을 강조하는 '군대식' 리더였다. 반면 나는 내 세대에 어울리지 않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놓길 즐겼고, 상무님의 다소 독단적이고 올드한 기획에 대해서도 "이런 방향은 어떨까요?"라며 다른 목소리를 내곤 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추진했던 프로젝트 결과물에 대해 CEO는 "상당히 혁신적이고, 기발한데?잘 추진하면 꽤 괜찮겠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내 직속 상사인 A 상무님의 인사평가는 냉혹했다. 성과는 냈지만 '태도'가 불량하다는 것이었다. 상무님의 안경으로 본 나는 '유능한 인재'가 아니라 '조직의 질서를 흐리는 불편한 존재'였다. 본인 말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 후 A 상무님이 떠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B 상무님이 팀장으로 부임했다. 나는 이전과 동일한 업무를 했고, 비슷한 퀄리티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180도 달랐다. B 상무님은 나의 아이디어를 '창의성'으로 해석했고, 나는 꽤 좋은 인사평가를 받았다. 1년 사이에 내가 갑자기 일을 더 잘하게 된 걸까?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상사의 '기준'이 바뀌었을 뿐이다.
때로는 사소한 오해가 미움을 만들기도 한다. 한 직원은 팀장이 자신에게만 차갑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회의 때 스마트폰으로 회의록을 적는 모습이 팀장 눈에는 '딴짓'으로 보였던 게 화근이었다. 노트북을 펼쳐 대놓고 회의록을 적기 시작하자 팀장의 태도는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졌다.
또 다른 직원은 보고 스타일이 문제였다. 두괄식을 좋아하는 상사에게 장황한 배경 설명부터 늘어놓으니 늘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보고의 순서만 바꿨을 뿐인데, 팀장은 "요즘 일 잘하시네요"라는 찬사를 보냈다. 일을 잘하게 된 게 아니라, 보고의 주파수를 맞춘 것뿐인데 말이다.
본인만 모르는 사소한 습관이 미움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어떤 한 직원의 사례이다. 3개월간 팀장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옆자리 동료에게 슬쩍 물었다.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을까요?"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OO선임, 회의 때 핸드폰 계속 보잖아."
그는 회의록을 적기 위해 스마트폰 메모장을 켰지만, 팀장 눈에는 그저 딴 짓하는 팀원으로 보였을 뿐이다. 다음 날부터 그는 노트북을 펼쳐 대놓고 회의록을 적기 시작했고, 팀장의 태도는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졌다.
또 다른 직원은 보고 스타일이 문제였다. 배경부터 장황하게 설명하는 그에게 팀장은 늘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라며 말을 끊었다. 그는 팀장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지만, 동료는 귀띔해주었다. "팀장님은 두괄식을 좋아해." 보고의 순서만 바꿨을 뿐인데, 팀장은 "요즘 일 잘하시네요"라는 찬사를 보냈다. 일을 잘하게 된 게 아니라, 보고의 주파수를 맞춘 것뿐인데 말이다.
내가 20년 넘게 HR Field에서 목격한 가장 흥미롭고도 서글픈 장면은 이것이다.
A팀에서 "소통 능력이 제로이며 조직의 흐름을 깨는 문제아"라며 인사고과 최하위를 받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믿으며 퇴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부서 이동 후, 그는 B팀에서 "최고의 집중력을 가진, 군더더기 없는 에이스"로 칭송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가 갑자기 환골탈태하여 일을 잘하게 된 걸까? 아니다. 당신이라는 원석의 빛깔은 그대로다. 다만 그 빛을 굴절시켜 보는 상사의 안경이 다를 뿐이다. 어떤 상사에게 '신중함'은 '답답함'이 되고, 어떤 상사에게 '추진력'은 '독단'이 된다.
결국 A팀의 문제아가 B팀의 에이스가 되는 결정적 이유는 '나의 변화'가 아니라 '나를 해석하는 눈의 변화'에 있다. 상사 한 명의 편협한 렌즈에 당신의 소중한 커리어 전체를 베팅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상사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퇴직원을 쓰기 전에 딱 세 가지만 복기해보자.
1) 객관화된 동료의 눈을 빌려라: "나한테만 이래?" 혹은 "팀장님이 원래 이런 스타일이야?" 이 질문 하나가 내 마음속의 지옥을 걷어낸다.
2) 사소한 트리거를 찾아라: 보고 방식, 회의 태도, 혹은 지나가듯 뱉은 한마디. 내가 무심코 밟은 팀장의
'지뢰'가 있다면 그것부터 제거해야 한다.
3) 그래도 안 되면, 그건 당신 문제가 아니다: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도 당신 상사가 여전히 당신을 '찍어서'
괴롭힌다면, 그건 상사의 인격적 결함이지 당신의 무능이 아니다. 그때는 버티거나, 아니면 우아하게 떠날 준비를 하면 된다.
기억하자. 상사가 바뀌면 평가도 바뀐다. 당신의 가치는 누군가의 변덕스러운 호불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밤, 상사의 차가운 말투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있다면 자신에게 말해주자. "나는 여전히 유능하고, 우리는 그저 안 맞을 뿐이다"라고.
[다음 회 예고] 관계의 파도를 넘고 나면 이제 '일'이 보인다. 그런데 혹시 "이건 내가 해야 직성이 풀려"라며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14회에서는 "위임의 기술: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탈출하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