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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Mar 10. 2023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이별

Ep.1 당신과 나의 소음 (1)

어릴 때부터 결혼은 되도록 빨리하고 싶었다. 미완의 상태가 주는 가능성, 그 가능성이 주는 지옥 같은 시간이 지레 두려웠다. 참 많이 들었던 노래 중 하나가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였다. (플라톤의 ‘향연’을 모티프로 해 원래 하나였던 인간이 두 개로 쪼개진 후 사랑을 하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디 앨런 감독님 말씀처럼 ‘인생은 인생만의 계획이 있어’ 난 34년을 미혼인 상태로 살았다. 실제 긴 솔로 생활에 대한 평을 하자면 ‘그냥 별로 였다’. 영화 별점으로 치면 별 두 개 반 정도. 엄청 나쁜 정돈 아니고 그냥 좀 별로.

영화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 노래가 나오는 장면


많은 20대처럼 나도 관계에 대한 열망과 생의 활기를 갖고 있어서 숱하게 데이트를 했다. 그중 어떤 관계는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으로 망쳤고, 어떤 관계에선 상대가 도망쳤고, 어떤 관계는 서로 욕보이며 끝나기도 했고, 어떤 관계는 별 자극 없이 심심하게 서로의 일상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사실 3년이 남짓 사귄, 영화 찍던 친구를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가끔 일기장에 휘갈겨 놓은 원망 어린 글귀를 볼 때면 이게 당최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르겠어서 민망해지곤 한다.


그중 선명하게 기억날 만큼 끔찍한 이가 있었다. 이전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소음 수준이라면, 이건 쇠 가는 소리를 코 앞에서 듣는 정도였다. 그리고 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로 나이가 많았고, 언어 능력이 뛰어났고, 나이에 비해 잘 생겼었고, 주말도 없이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미친 듯이 일하면서 자기 자신을 잊은 듯 사는 것 같았다.


그는 무서운 얘길 많이 했다. 친엄마가 자신과 여동생을 버리고 떠났다는 얘기, 수해 전 헤어진 연인이 이별 후 해코지를 했다는 얘기 같은. 그때마다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안쓰러웠다. 내 마음속엔 꽤 예쁜 정원이 있는데, 외로운 그가 내 정원에서 쉬길 바랐다.


그에게 빠져든 건 연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도 결핍이 있었다. 우리 부모는 돈이 제일 중요해 지성과 예술을 향한 나의 열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고, 몰이해로 인한 빡침은 가족을 넘어 한국 사회로까지 번지고 있었다.


사회 곳곳의 돈과 위계에 찌든 사람들을 혐오하고, 예술과 철학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 곁에 뒀다. 돈만 생기면 유럽행 비행기를 끊었다. 어느 해인가 베를린으로 훌쩍 떠났을 때, 동베를린의 황량한 공기를 코에 쑤셔 넣으며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죽어야 할 곳은 여기야’ 라는 되도 않는 허세에 찬 혼잣말을(한국어로) 내뱉기도 했다.



남의 나라 남의 도시에 가선, 꼭 그 동네 대학교에 들러 외국인 학생 인척 돌아다니다, 화장실을 쓰고 오곤 했다. 이방인의 삶이 처절하게 외로운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떠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그 당시 나의 소음이었다. 그 남자는‘지금, 여기’를 떠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만난 지 두 번 만에 그는 같이 유학길에 오르자고 했다.‘당신이 학교에 가면, 나는 집에서 살림을 할 거야’라면서.


나는 내 외로움을 이해해준 그에게 완전히 반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Ep.1 당신과 나의 소음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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