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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Jul 16. 2021

1%의 공통점

아내에 관하여

 2018년 1월, 나는 인구 10만을 겨우겨우 넘는 작은 도시에 첫 발령을 받았다. 직원 수는 8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곳이었기에 당연히 신규 발령자들의 지원은 미달되었고, 결국 같이 합격한 동기들 중 성적이 비교적 좋지 않았던 5명이 함께 좌천성 신규 임용되었다. 그중 여자 동기 1명과는 회사와 가까운 곳에서 겨우 시골 오솔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취를 하게 되었다. 


 우린 ①20대 후반이고 ②사지 멀쩡하고 ③각자 아는 사람 없는 타지에서 ④서로 솔로인 상태로 ⑤바로 맞은편 집에서 둘 다 자취를 하고 ⑥출퇴근도 같이 했다. 사랑이 피어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물론 사람이 마음에 들어야겠지. 최적의 온도, 습도, 토양을 갖춘 온실에도 썩은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지 않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우량한 씨앗이었고, 우량한 씨앗과 최적 조건의 온실이 만난 결과, 우리는 사랑이란 꽃을 피우고 부부가 되었다. 


 나의 브런치 첫 글은 바로 위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내에 대하여 일부분 써보려고 한다. 아내는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민감하고, 청결과 위생에 아주 신경을 쓴다. 예를 들면, 아내는 화장실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끼어 있는 광경을 정면으로 목도하지 못한다. 쳐다보질 못 하니 당연히 화장실 청소는 오롯이 내 몫이다. 혼자 살 땐 어떻게 치웠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휴지 한 뭉텅이로 싸 가지고 겨우 버렸단다. 아내가 시력 교정 수술을 하지 않는 이유도 '더러운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라니 말 다했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아내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화장실이 나오면 학을 떼며 고개를 돌린다. 용변 보는 장면은 물론, 양치하는 모습만 나와도 기겁을 한다. 또 식당에서 자리를 선택할 때 화장실이나 주방 쪽이 보이는 자리는 절대 택하지 않는다. 맛있는 걸 먹기 전에 비위가 상하는 걸 피하고 싶다고 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바로 놓아두지 않고 다른 접시 위에 올려두는 것은 이쯤 되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청결이나 위생에 보통 사람들보다 무던한 편인 나로서는 아내와 만나기 전엔 이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나는 늘 그게 뭐 대수냐는 식으로 말하고 쳐다보지만, 아내는 30년을 그렇게 살아온 탓에 이제는 별 불편함도 못 느끼는 것 같다. 오히려 2년가량을 함께 살다 보니 어느샌가 나도 아내의 위생 관념을 닮아가는 느낌이다. 깨끗해 보였었던 식당의 식탁들이 꾸덕꾸덕하게 느껴지고, 안 보였던 집안의 먼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나는 아내를 만나 한 단계 진화한 것이 아닐까. 


 우리 부부는 참 다른 점이 많다. 100개의 선택지 중 1가지가 같으면 99가지는 다르다고 보면 된다. 아내는 한정식을 좋아하지만 나는 일식, 양식을 좋아한다. 아내는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지만 나는 블록버스터나 공포,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 책도 아내는 에세이나 일반적인 소설을 좋아하지만 나는 추리소설만 고집한다. 유일하게 비슷한 것은 다소 내성적인 성격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이좋게, 결혼하고 크게 싸운 적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고 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나아간다는 것만이 중요하지. 찍먹이냐 부먹이냐, 민초냐 반민초냐는 취향을 존중해주면 될 문제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서 잠들고, 같이 밥 먹고, 웃으며 있어주는 것만이 오롯이 나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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