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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의 우주 Jun 15. 2019

그냥 해보자 시리즈 - 2

[웨이트 트레이닝] 그냥 해보자

퇴사를 이틀 앞두고 독감 진단을 받았다. 골골거리며 방 안에서 5일간 독감과의 사투가 끝나자 곧장 위경련이 찾아왔다. 또 5일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소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회사 다니면서 요가와 필라테스로 체력을 다지고 가끔은 배드민턴과 러닝을 하며 건강한 생활을 유지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몸은 많이 지쳐있었나 보다. "그래, 맞아. 근 4년간 항상 예민하고 긴장한 상태로 있었어. 압박감이 한 번에 풀리니 몸이 아플 만도 해"라며 10일간 자기 합리화했다. 


그렇게 약 2주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 본격적으로 퇴사 라이프를 즐겨보려는 찰나에 존경해 마지않는 어머니 최여사께서 묵직한 돌직구를 날려주셨다. 긴장이 풀려서 아픈 게 아니고 4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술이 네가 쉬는 거 귀신같이 알고 신나서 술독으로 발효돼 네 몸을 공격하는 거라고. 뼈가 아니라 장기까지 때려버린 꽉 찬 직구에 정신은 이미 삼진 아웃당했다. 맞아, 그랬었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좋아 술자리는 빼지 않고 나갔었지. 심지어 퇴사 두 달 전부터는 거의 매주 3~4일간 술을 마셨었지. TPO에 맞는 안주도 함께.


다시금 생각해보니 술 마시려고 산 것 같은 두 달이었다. 퇴사 라이프고 뭐고 일단은 건강을 되찾는 게 최우선이었다. 어떤 운동이 나에게 맞을까 고민하던 중 웨이트 트레이닝이 눈에 들어왔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집에서 1분 거리에 헬스장이 있다는 편의성, 항상 그룹 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혼자 하는 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모험심, 온통 물살인 내 몸에도 근육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라는 호기심으로 바로 개인 PT를 등록했다. 일주일에 1~2회 50분씩 트레이너 웨이트를 하고 PT 수업이 없는 날에는 배웠던 근력 운동들을 복습하며 유산소까지 더해 2시간씩 몸을 움직였다.


한 달 정도 주 5회 운동을 하니 삶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어깨, , 가슴, 하체, 엉덩이 등 부위별로 분할해 기구나 덤벨을 이용한 운동을 하다 보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한 번에 특정 부위의 근육이 자극되는 게 느껴진다. 근육들이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나도 덩달아 생동감이 느껴진다. 15회 정도 최소 5세트씩 반복해서 동작을 하다 보면 부위마다 근력으로 밀어내고 당길 수 있는 중량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무게를 올릴 때마다 성취감이 일렁인다. 두 칸, 세 칸, 네 칸 무게가 늘어날 때마다 하나씩 퀘스트를 깨 가는 즐거움이 있다. 처음에 맨손 혹은 빈 바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팔을 부들거리고 어깨에 힘 잔뜩 주며 으아악 소심한 괴성을 질러댔었다. 양 옆에 5kg씩 추가해서 벤치프레스를 하라고요? 5kg 덤벨을 들고 팔운동을 하라고요? 제 몸무게를 다리로 밀어낸다고요? 제가 이걸 할 수 있다고요? 매 수업 때마다 트레이너 선생님께 물음표 살인마처럼 의문을 쏟아냈었다. 저는 못 해요. 무리예요.라고 말했지만 트레이너 선생님은 매일 와서 꾸준히 운동하시면 가능하다며 내게 주문을 걸어댔었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한 달 정도 꾸준히 운동을 하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 해내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 just do it! impossible is nothing!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하기까지 한 이 캐치프레이즈들을 몸소 체험하게 되니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났다. 운동을 하면서 찾은 생동감과 성취감 그리고 자신감은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쳤다. 완벽에 대한 집착으로 자책을 하게 될 때면 끊임없이 어둠 속으로 침잠하곤 했는데 이제는 무언가 시도해 보면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고 자신감을 얻으며 극복하고 있다. 건강한 육체에 맑은 정신이 깃든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먹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됐다. 술 마시는 횟수를 현저하게 줄였고 채소와 과일을 매일 챙겨 먹으며 균형 있게 영양분을 섭취하려 노력하고 있다. 건강한 식단에 집중하다 보니 직접 장을 보게 됐고 요리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케일과 상추, 토마토 등 채소들을 정성스럽게 씻으면서 원물의 모양새를 자세히 만져보기도 했고 바질 페스토와 발사믹 소스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현미밥에 채소를 듬뿍 넣어 건강한 김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맵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주는 행복감을 잊을 순 없지만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 또한 알게 됐다. 거창한 음식은 아니지만 먹을 것들을 직접 요리하다 보니 나 자신을 돌보며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살아오면서 위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주거나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닦아세웠고 부족하다며 밀어붙였다. 주변 사람들은 언제고 품을 내어줄 수 있다며 내게 큰 위로를 주었지만 그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왜 채워지지 않는 헛헛한 기분이 들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자신을 돌보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어야만 나를 붙잡고 있던 것들을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말로 아니면 생각으로 혹은 스스로에게 올곧이 집중하는 시간들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경험을 쌓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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