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푸른 이유는
바다가 푸르기 때문이라 했던가.
물을 무서워하던 나에게 바다는
늘 불안함을 주는 존재였다.
수영장처럼 바닥이 보이거나,
깊이가 정해져 있어야 안심이 되는데
바다는 아무런 제한이 없기에 더 두려웠다.
온전히 우리 가족 넷이 바다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들에게 ‘바다를 무서워하는 엄마’가 아니라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엄마’로 보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늘 첫째에게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가 태어난 뒤,
나에게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사실 우울감은 늘 내 안에 있었고,
이 시기에 정식 진단을 받았을 뿐이다.
무기력하고, 귀찮아하고,
누워만 있던 엄마.
아이에게 그런 모습으로 다가갔다.
가족화 심리검사에서
아이의 그림 속 나는 방문을 닫고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그 그림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미안했다.
그 후로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글을 쓰며 나를 찾고,
마침내 완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이를 위해 많은 것들을 다시 시도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하던 내가
같은 반 엄마들과 모임에 나갔고,
스키장에 가서 일부러 스키를 탔다.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바다에 대한 도전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바다를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달라질 테니까.
두려웠지만,
구명조끼와 우리 가족을 믿고
용기를 내 바다에 몸을 맡겼다.
실외 온도는 38도.
차가운 바닷물 온도는 24~25도쯤 되었을까.
그 물결에 몸을 누이자마자
뜨거운 여름날의 얼음물처럼 청량했고,
신이 나기 시작했다.
한참을 물놀이하다
아이와 함께 바닷가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하늘이 어쩌면 그렇게 찬란하던지.
바다처럼 넓고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늘나라에 있는 우리 둘째 아이가 떠올랐고,
속으로 외쳐보았다.
“하람아, 보이지?
너의 형과 동생, 엄마 아빠가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이 아름다운 하늘 위 어딘가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 가족을 다 보고 있을 것 같아 든든하고 기뻐.
사랑해.”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더 밝아지고 개구쟁이가 된 데에는
나의 변화가 분명히 한몫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자랑하고 싶다.
육아는 분명 쉽지 않다.
찬란한 하늘 아래 벅차게 기쁜 순간도 있지만
그만큼 벅차게 지치는 날들도 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기에,
우리 아이들은 언젠가 큰 풍파를 만나더라도
우울함을 이겨내고, 감정을 돌파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리라 믿는다.
성난 파도와 해일이 몰려와도
바닷속 깊이 닻을 내린 배처럼
견뎌내고, 부딪히고, 마침내 도착지에 닿을 것이다.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이기에...
그리고
나는,
그 거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