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도전 -> 믿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시절이 있다.
짐을 싸고, 도착해서 풀고, 다시 싸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번거롭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가족 여행을 떠날 때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여행은 즐거워야 하는데, 준비하느라 힘든 엄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예민한 아빠.
그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여행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계획한 여행은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대부분 무박 반나절.
여행은 내게 ‘쉬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 소모’로 다가왔다.
결혼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바다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매년 한 번은 꼭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 하는 사람.
결혼 전, 예비 시가와 함께 바다로 여행을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2021년 2월.
우리 둘째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바다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다.
파도 소리만 들려도 눈물이 났다.
차가운 바람, 끝없는 수평선,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
그 모든 것들이 내 슬픔을 조용히 감싸주는 것 같았다.
답답했던 가슴이 바다를 마주할 때만큼은
조금 숨이 쉬어졌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참 작고 덧없게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아픔조차도 언젠간 흩어질 거란
묘한 위로가 생겼다.
여행이 주는 ‘일탈’도 처음엔 낯설기만 했다.
결혼 전에는 가져갈 수 있는 건 죄다 싸들고 다녔다.
짐은 늘 어마어마했다.
결혼하고 나선 외식이나 현지 식사도 처음엔 어색하고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점점 받아들이게 됐다.
이곳의 방식대로 살아보고, 느껴보는 것.
그 자체가 여행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낯선 곳, 낯선 음식, 낯선 리듬.
그 안에 담긴 작은 해방감이
내겐 꽤나 큰 변화였다.
이번 여름, 우리는 변산으로 떠났다.
출발하는 차 안에서 조용히 모닝페이지를 쓰는 나를 발견했다.
어떤 순간보다도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이,
자연을 온전히 누리고 맛보는 시간으로 채워지길.
그리고 나처럼 변화가 서툰 누군가에게도
이런 여행이 ‘회복’이 되어주길.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는 건
아직도 내게 ‘도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내 안의 높은 불안 기질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남편’이라는 우직한 등대가 있기에
어디든 기꺼이 떠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