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성찰 1 티어
나는 자아성찰을 참 많이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건 자아성찰보다는 자책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돌고 돌아 결국은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개신교 신자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랑과 은혜인데,
나는 오히려 ‘죄인’이라는 정체성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누군가와 다퉈도, 불편한 일이 생겨도 ‘내가 잘못했나?’를 먼저 생각했다.
문제를 내 탓으로 삼아야 어딘가 마음이 편해졌다.
육아는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의 문제집이었다.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그 간절함은 작은 충격에도 후두두 무너졌다.
참고 또 참다가,
결국 감정을 폭발시키는
익숙한 악순환.
9년을 반복했다.
.
.
....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다른 선택을 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면,
나는 늘 혼자 있었다.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말을 아끼고
자신을 혐오하며 마음을 웅크렸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감정이 다 가라앉기도 전에
아이의 고요한 슬픔이 먼저 보였다.
“엄마가 안아줄게.”
그 말이 내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너무 미안해.
사랑하는 너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
엄마를 참 미워지게 해.
이건 엄마가 풀어야 할 숙제야.
엄마의 몫이니까, 엄마가 책임질게.”
아이의 눈물이 내 품에서 터졌다.
우리는 그렇게
감정이 아닌 마음으로 다시 만났다.
진짜 중요한 건
그 후에 어떻게 다시 연결되느냐였다.
마음을 열고,
다시 안아주는 것.
진심을 전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게 더 중요했다.
이 작은 깨달음이
9년간 가두고 있던 내 마음을 풀어줬다.
‘더 이상 화라는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는 바뀔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 믿음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자유롭게 한다.
엄마란 자리는
언제나 미완성이다.
그래서 매일 실패하고,
그래서 매일 자란다.
이제야,
비로소
“엄마”라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