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이라는 말은 최근 몇 년 새 익숙한 표현이 되었다. 세상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던 시대의 용어.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은 변화하는 노동 형태에 관한 담론이 아니라 내 삶의 형식이 되었다.
내가 발을 들인 곳은 회사도, 점포도, 작업장이 있는 사업체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일터는 지도 위의 좌표가 아니라 로그인 상태로 정의되었다. 노동은 공간이 아니라 시스템에 접속하는 행위로 시작되었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고 동시에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도 않았다. 고용되지 않았지만 자유롭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책임은 개인에게 있었고 통제는 시스템에 있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고치기 전에 나는 먼저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었다. 화면은 새로운 출입구였다. 현관문 대신 알림음이 나를 불러냈고 작업 지시 대신 요청서가 도착했다. 나는 호출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고 동시에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수락과 거절, 견적과 침묵, 반응 속도가 곧 생존 조건이 되었다.
나는 플랫폼을 이용한다기보다 그 안에 기거하고 있었다. 로그아웃 상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로그인 상태에서는 언제든 호출될 수 있었다. 일터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접속 상태로 유지되었다. 그곳에는 출근도 퇴근도 없었다. 대신 접속과 대기가 있었고, 호출과 응답이 있었으며, 수락과 거절이 반복되었다. 노동은 하루의 리듬이 아니라 알림의 간격에 의해 분절되었다.
요청서는 그 세계의 언어였다. 몇 줄의 문장, 짧은 설명,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 그 안에는 작업 내용뿐 아니라 노동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기대, 때로는 무지가 스며 있었다. 몇 줄의 문장 안에서 나는 작업의 난이도뿐 아니라 분위기와 긴장도 예감할 수 있었다. 어떤 요청서는 구체적이었고 어떤 요청서는 막연했다.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수리/점검'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적혀있기도 했고 이미 답을 정해놓은 듯한 설명이 이어지기도 했다.
요청서에는 종종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간단하게 00만 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항상 이 문장 앞에서 멈칫했다. 작업의 난이도를 낮추는 말은 대체로 작업의 대가 역시 낮추기 위한 서두였기 때문이다. 간단하다고 스스로 판단까지 할 수 있다면 왜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금방 끝나죠?"
작업의 시간을 먼저 묻는 고객들이 있다. 그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나는 짧게 답하곤 했다.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작업의 무게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으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금방'이라는 말은 시간이 아니라 조건과 위험의 문제에 가까웠다.
노동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론이 아니라 생활을 통해 체감했다. 일은 더 이상 특정 장소에 묶이지 않았고, 계약 관계 역시 전통적인 고용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안정적인 고용과 정해진 근무 시간을 기반으로 한 고용 형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이 유일한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러 개의 일을 병행하거나 단기 계약과 호출 기반 노동을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점점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노동은 공간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통제로 이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도 많이 들어오고 이젠 좀 할만하다 싶었을 때, 50만 원도 되지 않던 수입이 100만 원을 넘어갔다. 하지만 통장에서 돈이 사라지는 속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목돈을 넣어둔 통장에서 조금씩 내어 써야 했다. 절약을 했다. 그래도 사정은 같았다. 어느 순간 데자뷔가 왔다. 매출과 순수익을 구분하지 않고 주문량이라는 신기루에 흡족해하던 그때처럼 돈이 어디에선가 새고 있었다. 아니 내가 보지 못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건 플랫폼의 수수료였다. 나는 한 달에 150만 원을 벌면서 수수료로 90만 원을 내고 있었다. 공구와 자재 구입보다 더 큰 매입비용이 지출되는데 계산에 넣지도 않고 있었다.
플랫폼의 수수료 정책은 교묘했다. 일단 '캐시'라 불리는 것을 원하는 만큼 구매한다. 그리고 요청서가 올라오면 견적을 보낼 때마다 얼마간의 비용이 차감된다. 계약이 성사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나는 견적을 쉼 없이 날렸다. 항상 핸드폰을 옆에 두고 요청서가 뜨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계약이 성사되는 비율도 높았다. 일이 많이 들어오니 그저 좋았는데 역시 거래가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그저 좋은 일은 없었다. 한번 견적을 보낼 때마다 1,000원이나 2,000원대의 캐시가 필요했을 뿐이지만 그 금액이 10배가 되고 100배가 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후 견적을 보내는 데 좀 더 신중하게 되었다. 일이 적어졌다. 수입도 적어졌다. 회의감이 찾아왔다.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 하지만 다른 대안도 없었다. 게다가 모처럼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는데 버리기도 아까웠다. 나는 균형을 찾으려 애쓰며 계속 일을 해나갔다. 7kg 정도 되는 백팩을 메고 하루에 7000보 이상을 걸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현장을 방문하는 일. 예상치 못한 환경을 수시로 맞닥뜨리며 당황스러움을 땀으로 녹여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 전기 지식이 없는 고객과 소통하는 일. 그리고 분쟁의 싹을 자르거나 해결하는 일.
플랫폼에서 노동자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다. 얼마나 빠르게 반응할 것인지, 어떤 요청서에 견적을 보낼 것인지, 얼마의 비용을 감수할 것인지. 망설임은 곧 기회의 상실로 이어졌고 무분별한 응답은 지출의 증가로 귀결되었다. 플랫폼은 일자리가 자유롭게 공유되는 공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자유는 선택이 가져오는 무거운 대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비로소 사업에 필요한 계산을 배우기 시작했다. 견적의 개수와 비용, 이동 거리와 작업 시간, 체력과 수입 사이의 균형을. 그리고 그 계산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일을 계속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