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은 전기에서 시작되었지만 분쟁은 관계에서 발생했다. 전선보다 어려운 것은 사람의 기대치였다. 전기 일을 하면서 난생처음으로 내용증명이라는 것을 보내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진행하기도 했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천장 위의 사정에 대해서 고객들이 알 리가 없다. 그래서 작업보다 설명이 더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고객이 어떠한 이유로든지 내 말에 신뢰를 갖지 않으면 방법도 없었다. 소통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분쟁이 생겨났다.
"지금까지는 켜졌잖아요."
"문제가 있는 지점이 버티고 버티다가 건드리면서 한 번에 노출된 겁니다."
소용없었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쯤 된 시점의 나는 평범한 사람이 납득할 만큼 상황을 단순하게 번역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흐려졌지만 켜졌던 등이 내가 손을 대고 새 등을 달자 켜지지 않게 된 것은 전선의 상태로 보아 그간 축적된 발열과 탄화가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등이 켜지지 않았을 때의 나는 그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고객은 놓치지 않았다. 애초부터 뭔가 마땅치 않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는 이후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고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댔다. 나는 전선을 정리하고 등을 켜지도록 만들어놓은 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계속 작업하기는 힘들다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후 화가 난 고객의 남편은 출장비와 작업비를 줄 수 없다고 버텼다. 이렇게 시작된 분쟁은 두어 달 진행되다 결국 내가 백기를 드는 것으로 끝났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는 미숙했고 칼자루를 쥔 건 어차피 고객이었다.
그렇게 때로는 분쟁이 생겼고 때로는 의구심 어린 눈빛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눴다.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종종 시험대 위에 올라 있는 기분을 느꼈다. 기술보다 먼저 평가되는 것은 태도와 확신, 그리고 어딘가의 '믿을 수 있음'이다. 생각했다. 내가 여자라서일까. 그건 확인할 수 없을뿐더러 설사 그렇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놓아야만 했다. 일단은 을의 자세로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하기로 했다. 작업일지를 작성하며 배울 점을 정리해 나갔다. 경험에서 우러날 노련함은 시간만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답답했지만 전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고 있구나. 사실 신기할 때가 많다. 그들은 나를 모르는데, 게다가 나는 아직도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신뢰를 보내주다니. 물론 나는 그동안 현장의 지식이 쌓였고 그것을 설명하는 기술도 늘었다. 작업의 속도나 숙련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도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고객은 낯선 방문객이 빨리 일을 마치고 사라지는 것을 우선적으로 바란다는 믿음에 맞추려 했다. 나는 전선을 다루고 있었지만 동시에 분위기를 관리하고 있었다. 확신이 없을 때조차 확신 있는 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서비스 노동은 기술보다 표정이 먼저 소모되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하기 이전에도 어떤 만남은 긴장과 소모가 아닌 따스한 여운을 남겼다. 음료수나 과일을 챙겨주거나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곁을 서성이거나 돈을 받고 한 일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는 진심을 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힘드시죠"라는 한 마디에는 긴장이 풀리기도 했고 작업이 끝나고 밝아진 공간을 보며 같이 기뻐하기도 했다. 흔히 생각하는 '인간미'라는 것이 매번 느껴진 건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더라도 고객들과의 전반적인 관계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짧은 대화, 조명 하나를 사이에 둔 설명, 그리고 작업이 끝난 뒤의 몇 마디. 그 만남들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건조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가장 안정적인 관계 구조 속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았고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았다. 역할이 끝나는 순간 관계도 자연스럽게 종료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거의 알지 못했지만 그 관계는 완전히 비어있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객들과의 소통만으로도 인간관계에 그리 목마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정한 거리, 명확한 역할, 그리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는 구조. 그것이 내가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관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낯섦과 신뢰가 잠시 교차하는 순간마다 미세하게 확인되는 나의 존재감이었다.
현장의 노동은 전선과 공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신뢰를 얻고 기대를 조정하며 감정을 관리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전기를 고치고 있었지만 동시에 관계를 수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