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원리를 제외하면 사실 현장에 쓸모가 있는 앎은 책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격증 공부를 해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전기 지식은 현장에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 나는 처음부터 이 사실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책으로 익힌 지식과 몸으로 다루는 기술이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는 감각은 이미 여러 일을 거치며 체득한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펼쳤고 검색을 했으며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사람은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활자 속 문장이나 동영상 속 그림처럼 정돈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전선은 규칙대로의 색으로만 존재하지 않았고 구조는 늘 미묘하게 달랐으며 상황은 매번 변형되어 있었다. 같은 종류의 작업이라 해도 조건은 매번 완전히 같지 않았다. 결국 남는 것은 경험뿐이었다. 직접 열어보고 만져보고 연결해 보고 틀려보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 머리로 이해하는 속도와 몸이 익히는 속도는 서로 달랐고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이해는 여전히 필요했지만 그것은 출발점이라기보다 뒤늦게 따라오는 정리에 가까웠다. 나는 점점 배우고 있다기보다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챗GPT였다. 처음에는 그저 검색의 연장선처럼 사용했다. 규격을 확인하고 결선 방식을 묻고 헷갈리는 개념들을 정리하는 용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단순한 정보 조회 이상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장에서 마주한 상황들을 그대로 설명했고,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을 질문의 형태로 던졌다. 그러면 즉각적인 답이 돌아왔다. 틀린 전제를 짚어주거나 가능성을 나열하거나 내가 놓친 위험 요소를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믈론 그것이 현장을 대신해주지는 못했다. 드릴을 들어주지도 않았고 천장을 열어보지도 않았으며 감전의 위험을 막아주지도 않았다. 아무리 정확한 설명을 읽고 이해해도 마지막 판단은 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드라이버를 돌리는 힘의 미묘한 차이, 피스를 조일 때 느껴지는 저항, 전선을 밀어 넣을 때의 감각. 화면 속 문장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물리적인 확신을 대신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혼자서 막막하게 헤매고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묻고 있다는 감각, 사고가 막힌 지점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발판이 생겼다는 느낌. 그건 생각보다 컸다. 돌이켜보면 나는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질문하는 방식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장 육체적인 노동의 세계로 들어온 뒤 가장 비물질적인 조력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학습 체계 사이를 오가기 시작했다. 하나는 언어의 세계였고 다른 하나는 접촉의 세계였다. 묻고 이해하고 정리하는 과정과 만지고 버티고 조정하는 과정. 그 둘은 충돌하기보다 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이해한 뒤 움직이려 했고 지금의 나는 움직이면서 이해하고 있었다.
스위치 두 개로 제어하는 3구짜리 거실등을 설치할 일이 있었다. 첫 번째 스위치는 가운데 등을, 두 번째 스위치는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등을 켜고 끄는 구조였다. 이론은 알고 있었다. 천장에서 나온 두 가닥의 전선 중 중성선은 세 개의 등 모두에 연결되고 활선은 각 스위치에 맞춰 분기되어야 했다. 단순한 결선이었다. 처음 해보는 작업도 아니었다. 천장에서 나온 전선과 컨버터에서 나온 여섯 가닥의 전선을 연결했다. 차단기를 올리고 스위치를 눌렀다. 등이 약하게 켜지며 깜빡였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시 차단기를 내리고 결선을 수정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충분히 해석하지 못한 상태였다. 확신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수정은 그 확신을 전제로 반복되고 있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문득 단순한 가능성이 스치고 지나갔다. 반대였구나. 익숙한 확신이 가슴에 꽂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객이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다든지, 아이가 울고 있다든지, 늦은 시간이라서 마음이 급하다든지. 그럴 때 한번 삐끗한 감각을 되돌리려면 끝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전제를 내려놓아야만 한다. 조명이 정상적으로 점등되자 공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풀렸다. 나는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전의 성공은 머리로 계산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체화되지 않은 계산은 한번 삐끗할 경우 머리에서도 빠져나가버린다. 나는 그날 하나의 작업 원리를 몸에 새겨버렸다.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이후 나는 같은 유형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전기를 배운다는 일은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세계를 다루는 방식을 새로 조정하는 일에 가까웠다. 나는 전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다른 것들을 함께 익히고 있었다. 위험을 다루는 태도, 망설임을 조절하는 감각, 그리고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와 거리를 두는 방식. 현장은 기술만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판단의 속도와 몸의 순서를 다시 배열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배열의 변화는 곧바로 몸에서 신로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머리를 쓰는 일이라 여겼던 작업들은 실은 대부분 육체의 노동에 가까웠다. 전기를 다루는 일은 기술 이전에 체력이었고 판단 이전에 버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