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4월 23일. 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의뢰받은 일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 천장에 붙어있던 펜던트 등이 떨어졌다고 했다. 무거운 공구가방을 들고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채로 서울 옥수동의 까마득한 오르막길을 올라 찾아간 아파트 7층. 나는 석고 앵커를 이용해서 한 시간 동안을 낑낑거리며 조명을 원위치시켰다. 그리고 현금 2만 원을 손에 쥐었다. 약간의 뿌듯함이 섞인 허탈감과 함께 그 비탈을 다시 내려왔다. 망설이다 용기 낸 첫 일을 제대로 해낸 건 분명 좋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힘들게 가고 오고 작업을 한 대가로서 2만 원은 사실 터무니없었다. 그래도 나는 경력자가 아니니까. 당분간은 욕심을 버리고 배운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첫 서너 달 동안의 내 작업 실력은 스스로 생각해도 수준 미달이었다.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여기저기 떨어지는 석고 조각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일을 하는 동안 바닥에 늘어놓은 자재와 각종 공구들로 고객의 집은 폭탄 맞은 것처럼 변해가곤 했다. 부끄러웠다. 몸 둘 바를 몰랐다. 뭔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게 작업을 더욱 더디게 만들곤 했다. 게다가 전기 작업은 계산하듯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경우가 잦다. 조명을 이루는 두 가지 필수적인 전선. 활선과 중성선이 만드는 단순한 구도가 현장에서는 복잡한 수식으로 탈바꿈하곤 했다. 한번 계산을 잘못하면 한두 시간을 잡아먹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절박함 같이 당연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성취감이었다. 일 자체도 어찌 되었든 적성에는 맞았고 일을 마치면 바로 대가가 주어지는 구조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듯했다.
단 한 번 중간에 일을 포기한 적은 있다. 그곳은 사무실이었다. 사람이 많았고 조용했다. 설치해야 할 것은 평판등이었다. 평판등은 위치를 정확히 잡고 무게를 견디며 밀어 넣듯 고정해야 하는 종류의 조명이었다. 나는 아직 그 작업에 능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작업 내용에 대한 체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적당한 부자재도 마음의 준비도 없다시피 한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차단기였다. 나에게는 사람들의 화면과 작업 흐름을 멈추게 할 수도 있는, 사무실의 전원을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감전의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나는 평판등을 들고 서 있었다. 숨 막히는 공간과 서툰 몸. 몇 번의 자신감 없는 시도 끝에 멘탈이 무너졌다. 나는 조용한 사무실 공간에 아직도 약간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그 경험은 단순한 실패라기보다 경계의 확인에 가까웠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고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몸으로 처음 자각하고 있었다. 현장은 기술만으로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권한, 책임, 위험,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동시에 작동하는 세계였다. 그곳에서의 나는 아직 작업자가 아니라 방문자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나는 차단기를 내 마음대로 조작하기 힘든 환경에 대해 경각심이 생겼다. 가능하면 작업을 피했고 피할 수 없다면 조건을 먼저 확인했다. 안전장갑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상황이었다.
"전에 다른 분은 그냥 하시던데..."
그 말은 대체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설득의 문제로 던져졌다. 이런 식의 반응은 친절하게 흘려보냈다. 전기 작업에서 용기는 필요하지만 무모함은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었으므로.
처음 한두 달간은 늘 긴장과 동행했다.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문이 열리기 전의 짧은 정적, 고객의 첫 시선. 그 모든 찰나가 미묘한 압력처럼 몸에 스며들었다. 나는 항상 평가받는 위치에 서 있었다. 실력, 속도, 태도, 심지어는 존재 방식까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의 기대를 감당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점점 이 세계에 붙들리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눈앞에서 바로 확인되는 변화가 있었다. 켜지지 않던 불이 켜지고 흔들리던 등이 안정되고 어둡던 공간이 밝아졌다. 고객의 얼굴에도 환함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추상적인 성취가 아니라 물리적인 전환이었다. 말은 필요 없고 결과는 분명했다. 나는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피드백 구조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팍팍했다. 이동시간은 길었고 작업은 고됐다. 차를 살 여유가 없어 무거운 공구가방을 메고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고객의 집까지 걸어서 도착하는 일은 체력을 지속적으로 잠식했다. 한참 초보자 티를 내며 일을 해나가던 때는 하필 여름이었다. 물을 챙겨 마셔도 탈수는 기본값으로 내 몸에 저장되었다. 땀에 젖어 들러붙은 앞머리, 민낯으로 사람을 마주하는 일도 유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기 작업'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다소 가벼운 느낌과는 달리 현장은 막노동에 가까운 힘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나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피곤을 어깨에 두른 채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 일에는 최소한 한 가지 확실한 규칙이 있었다. 일을 하면 대가가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신기루 같은 매출도, 거창한 액수의 매입도 없었다. 그 대가 역시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노력과 결과 사이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 공간이었다.
같은 종류의 하루가 반복되었다. 이동과 작업, 피로와 회복이 크게 다르지 않은 리듬으로 이어졌다. 특별히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몸은 서서히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익숙함은 기술보다 먼저 쌓여갔고 나는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버틴다는 감각은 어느새 두려움을 대체하고 있었다. 그렇게 낯선 세계의 가장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이동해 갔다. 여전히 서툴렀지만 더 이상 물러서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현장이라는 세계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