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in Jul 03. 2021

무엇인가.. 문득 생각이 떠오를 때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적어도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누군가가 생각이 나고, 어떤 행동, 사건, 장소와 연관된 추억들이 다시 머리 속으로 들어올 때 읽는 책이다. 환희에 찬 즐거움, 열정이 가능한 사랑을 벗어난 쓸쓸함, 또는 아득함을 배경으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런 책이다. 


이병률은 책은 혼자만의 여행, 정확히는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날 때 오롯이 혼자가 되었을 때 처음 접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작가의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찾아내어 읽었고, 수 백권의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병률의 책을 리뷰하게 된 것의 이유가, 고립과 부자유스러움에 대한 반발 심리인지 몰라도, 글을 담아놓은 나의 독서장에서 작가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시 그 날의 기억으로 돌아가 이병률의 글들을 담아본다. 그리고 다시 써본다.




2014년 가을의 풍경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책 하나를 폈다. 조금은 두툼하지만 화보와 글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읽기에 불편할 것 같지는 않다. 차창 밖을 때리는 빗소리와 유리벽을 따라 사선으로 흐르는 빗줄기에 부딪치며 자꾸만 뒤로 흘러가는 흩뿌연 풍경들 마저 있으니, 책 읽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사실 요즘 너무 세상 일에 관심 가지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점점 회색으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으니까.. 깨질듯한 두통과 생전에 그러지 않았던 밤잠을 설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다시 마음 속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필요했고 혼자 생각하는 것이 중요했고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 필요했다.

 

이병률의 글들을 읽고 있자면 어찌 그렇게 사람의 생각 속을 정확하게 읽어내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여행에 대한 느낌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 그리고 그리움에 바탕을 둔 사랑의 감정까지.. 글 하나 하나는 글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고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기품을 지녔다. 


여행지를 돌아보면서 그 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각 곳에서 가져온 일상의 감정들이 여행의 장소, 사물, 사람들에 대해 투영되어 있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어휘보다는 '좋아한다'라는 말로써 대신하며 써 내려간 글은, 여행을 앞두고 있거나 여행 중이거나 여행을 끝낸 모두의 감성과 연결될 수 있는 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여행 사진작가와 시인이라는 직업에 걸맞게 작가의 사진과 글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에 탁월한 듯 싶다. 나조차도 여행의 목적이 '가본다는 것'에서 '자세히 보는 것'으로, 다시 느끼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와 나의 일상에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여행의 개념이 바뀌고 있으니, 이병률의 글이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은 듯 하다. 


세 시간에 걸쳐 읽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다 목적지의 톨게이트에 이르러 책을 덮었을 때, 문득 이 책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 내가 받은 하늘색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으리라. 책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인데... 어느새 비는 그치고 새로운 땅에 발을 디뎠다. 작가의 이어지는 책을 기대해 본다. 내가 또 언젠가 마주칠지 모르는 소박한 방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그리고 2021년 여름의 풍경

이병률 책에서 받은 감흥을 다시 느껴본다는 것은 행복이다. 비록 2014년의 감정이 내 감정의 고갈을 무엇으로 채워지기를 희망했었다면 2021년 지금은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물리적 격리의 시대가 도래했고, 내가 위치한 공간이 바뀌었으며, 나이 숫자 앞자리도 바뀐지가 오래다. 심리적 고갈을 막으려는 충전의 의미가 변하여 지금은, 외딴 곳에서 가지게 된 신체적 외로움에서 해방하려는 의지가 크다. 


17년의 시간 차와 상이한 공간, 별개의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병률의 책을 찾아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은 아마 지금도 내가 마음의 방황을 계속하고 있어서가 아닌지... 2014년 낯선 땅에 발을 디디면서 느꼈던, 언제 있을지도 모를 방황에 대한 기우는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었나 보다.

이전 10화 여행, 길 잃기와 길 찾기의 연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