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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Jul 22. 2021

자연, 역사, 사람을 닮은
남도여행의 추억

인생 최고의 여행 남도 여행 추억, 구본형 선생의 <떠남과 만남>

꽤 오래 전 목포에서 통영까지 남해안 일주를 한 적이 있다. 굳이 여행이라고 쓰지 못하고 일주라고 표현한 것은 말 그대로 지역적으로 길을 따라 거쳐 온 것이 전부인 것도 있지만, 남도가 주는 역사와 문화와 사람의 만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중의 하나로, 또는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여행으로 나의 남도여행은 그렇게 기억속에 남아있다.


되돌아 보면 그 때의 남도 일주는 아쉬움을 상쇄시킬 만한 즐거움도 준 것이 사실이고, 처음 가보는 곳인 만큼 남도의 새로운 문화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구본형 선생이 쓴 책 <떠남과 만남>에 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사실 난, '변화'라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표현에 약간의 모순이 있지만, 변화가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빌미로 돈벌이의 수단이나 정당한 노동 이상을 요구하는 심적 압박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싫어하기도 한다. 특히, 사회, 기업, 조직 등 생활 곳곳에서 외치는 변화라는 단어는 그대로의 변화가 아닌 변화를 핑계로 한 현상 유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인식을 모순되게 만든 주원인이 되었다.

 

저자의 직장이 '변화경영연구소'라는 것을 보고는 그저그런, 뻔한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책으로 오인하는 것은 나만의 경우가 아닐 듯 싶다. '변화로 경영한다'는 것이 정답이 없고 실체가 없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판단할 때에는 자기개발이나 조직의 재구성, 인적 자원의 유지 같은 경영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어, 책 속에도 그저그런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 느낌은 '구본형'이라는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 사람인지를 단숨에 알게 하기 충분했다. 이 책은 겉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 담겨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품삯에 길들여진 직장인으로 야성을 잃어 버리고 시간을 소비하는 인생을 산다는 글귀에서 나의 안일하고 일상에 찌든 모습을 보았고,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한 작은 몸부림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시도하는 모습에서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내 모습이 투영되며 닮아 있었다. 저자가 20년만에 두 달 간의 여행을 기획한 것과, 나으 직장시절 1년에 한 번씩 3일간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었던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떠남과 만남>은 기행문적인 글이지만 기행문으로의 역할에 한정되지 않는다. 남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유스런 여행가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연을 보며, 역사를 배우고, 역사속에서 일분일초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에세이에 가까운 모습을 취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표현해 내는 저자만의 글솜씨는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감성과 통찰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요소다. 자연에서 역사와 사람과 인생을 느낀다는 것은 '자연 그 자체', '역사 그 사실', '사람 그 존재'만으로 생각해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서로 간의 연관성과 보완성을 인지하며 마음을 쿡쿡 찌르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범부의 능력밖의 일이니까 말이다.

 

섬진강에서 무욕을 생각하고, 고흥반도를 걸으며 천천히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며, 지리산 무착대에서 외로움의 근본을 살피고, 매화나무와 향기로운 사람의 진면목을 연결함은 물론, 운주사 석불에서 쉼의 의미를 깨우쳐주기도 하고, 강진과 충무사, 그리고 진도와 제주도에서는 다산과 이충무공, 삼별초와 4.3항쟁 등 간과할 수 있는 묵직한 역사적 사실들과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여행의 순간순간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 당시의 사회적 문제들을 실감나게 분석해 내는 것들이 명확한 사고의 틀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절대 과도하거나 편협되지 않음을 느낀다.


이러한 글 흐름은 떠남과 만남이 인문학적 글쓰기의 정수가 될 수 있는 요소들로서 충분하다. 어느 누가 이처럼 여행의 소재에서 많은 생각과 사상과 그림을 노래로서 그려낼 수 있을까? 아마 쉽게 찾지 못할 인문학자임에는 틀림 없을 듯 하다. 그리고 쉽게 배울 수도 없고... 


책의 마지막을 덮으면서 항상 느껴왔던 것이지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수년 전 남도 일주를 다녀왔지만 저자의 발자취를 쫒아 같은 느낌을 받고자 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일주가 아닌 일상을 떠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행으로서 말이다. 


다시 한 번 익숙한 일상을 떠나는 그 날, 그리고 그 전날 밤의 설레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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