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를 보며 던진 질문이 지금도 똑같이 되풀이 되는 이유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정제된 표현일진대 도저히 마음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하고 두렵고, 분노하면서도 허탈스런 감정의 울렁임이 계속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거쳐 안타까움을 지나 화를 내다가 이제는 안쓰러운 마음과 허탈한 심정에 도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극한의 개인주의가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일반화된 상식을 벗어난 궤변이자 아집에 불과하므로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노란리본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2002년, 미선이와 효순이의 아픈 상처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오프라인에서 전개된 자발적 운동이라면, 이번 노란리본 캠페인은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란리본의 의미가 조속한 무사귀환을 의미한다는 의미이기에 10일이 넘게 차가운 배에 갇혀있는 우리 아이들이 기적적으로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하고 염원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 그런 마음에서 노란리본으로 바뀠으니까...
하지만... 며칠 전 어느 실종자 어머니의 '이민간다'라는 말이 가슴이 박혀, 나와 우리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건 왜일까? 감정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의 말일수도 있고, 대한민국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물질적인 문제가 아닌 사람이 사람답게, 국민이 국민으로 대접받고 살아나갈 수 있는 세상의 함축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통과 괴로움을 피해 이 땅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없도록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말이다. 촛불? 노란리본이 최선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의 변화에 참여하고 투표하고, 의견을 개진해 사회 안전시스템 구조를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문득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수련원 화재, 체육관 붕괴, 그리고 지금의 사건까지...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을때마다 우리가 언제 슬퍼하고 애통해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는 생각이든다. 위로를 했고, 모금을 했고, 봉사를 했고, 촛불을 들었고 그리고 노란리본을 달았지만, 그 이후에 우리의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죄를 묻는 것은 당연하고, 이에 대한 시스템이 부족한 것에 대해 정부에 단호한 입장을 내세우는 적극적인 모습이 필요하지 슬퍼하고 아파하고 침묵만 해야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권력을 가진자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이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눈물은 눈물로서 의미가 있지만, 세상을 변화시켜 줄 땀은 아니듯, 슬픔을 견디는 고통과 고된 노동의 고통은 엄연히 다르듯이 말이다. 노란리본만이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친 아이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만드는 일의 몫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 2014년 4월 24일 글을 다시 옮기며
2014년 4월 16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날에 대한 정확한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쉽게 잊고 넘어가는 어느 하루의 기억이 '세월호' 뉴스와 더불어 '그 날'이라는 특정 시간, 특정 공간 속에 박재되어 있는 듯 하다. 나의 경우는 강원도 문막 오크밸리로 출장을 가던 길에 후배 직원과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하면서 그 소식을 들었고 그 때의 장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때의 식당 안 사람들의 탄식소리도...
그리고 10여일이 지나도 지지부진한 구조활동, 당시로는 손조차 대지 못했던 원인 파악에 분노했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었던 노란리본 운동을 보면서 글을 썼다. 그리거 노란리본이 과연 최선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8년 후 지금, 과연 우리는 그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대해 속 시원히 답을 해 본적이 있을까? 그러면서 우리는 8년 동안 진실 규명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을 앞세워 뒷북을 쳐대곤 했다. 두 번의 권력이 바뀌어도 변화는 미미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다시 2014년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준비를 했다. 할 만큼 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 속에 묻어두고 매년 4월이 되서야 그 기억을 되살려 왔다.
과연 노란리본만이 전부일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8년이 지나 다시 물어보자. 먹고 사는 것에 힘들어서, 부동산 값이 너무 올라서,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 물가가 많이 올라서, 세금을 많이 걷는대서, 여행을 가지 못해서, 주식 시장이 폭락해서, 코인이 뜻대로 안되서... 우리는 물질의 풍요를 누리기 위해 정신적인 소중한 기억들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과연 사회 전체의 정의와 나의 양심보다 나의 이익을 먼저 앞세워 행동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8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행동의 골든타임을 스스로 버렸다. 그래서 8년 전 했던 질문에 답을 내는 것에 우리는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매년 이 질문을 반복하면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하면서, 아무 변화 없이 그렇게 말이다.
최근 돌아가는 정치와 경제, 사회 곳곳의 모습을 보니 8년 전 오늘을 추모하고 기억만 하기에는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우리 머리 속에 서서히 없어질 것 같은 그 날의 기억이 두려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세월호를 움직일 수 있을까? 망각의 바다에 다시 세월호를 빠뜨릴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