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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razy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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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치는목동 Sep 28. 2024

간절함은 서울말을 구사하게 한다.

[Crazy Office 2화] 서울살이 시작, 첫 번째 면접

겨울에 눈을 보기 힘든 부산과 달리,


서울의 겨울은 새하야면서도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서울살이에서 수중의 돈 100만 원과 신용카드로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


한 달 내의 기간에 직장을 구해 일을 시작해야 했다.


고시원의 좁은 책상에 가져온 노트북을


올려놓고 취업사이트를 열었다.


역시 대부분의 직장이 몰려있는 대한민국의 수도답게


지원해보고 싶은 기업도, 도전해보고 싶은 업무도 많다.



사실 취업을 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무엇하나 내세울 수 있는 특출 난 스펙 하나 없었다.


좋지 못한 학점으로 부산의 공대 졸업, 군대 만기전역 외에


이력서를 채워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토익시험? 응시해 본 적도 없다.


펑펑 내리던 눈처럼, 하얗게 비어져있는 이력서를 보며


잠시 손가락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 그리고, 다시 이력서를 빼곡히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담낭암에 걸리시게 되었고,


전역 후 2년간 알바와 병간호를 병행하였지만.....


힘든 치료와 수술을 거듭하시다 끝내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렇게 남겨진 가족은 아버지, 형, 그리고 나.


어머니의 부재는 우리 형제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슬픔이었지만,


생전의 어머니 옷가지를 베개 대신 베고 잠드시는 아버지에게도


말 못 할 상실감이셨을 것이다.


조경 건축업으로 힘든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건강도 염려되었기에


반찬가게에서 매번 사와 때우던 끼니를 줄이고,


요리책을 보며 이것저것 만들어보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나의 20대는 친구들이 '알바인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많은 아르바이트 또는 계약직으로 일했었다.


전화상담원, 각종 행사 알바뿐 아니라


부산의 거의 모든 홈플러스 지점에서


때로는 신용카드 고객 유치를, 때로는 휴대폰 판매를,


때로는 청소용품 판매 등을 하였다.


다소 내향적이었던 성격은 고객을 상담하는 판매직을 하면서


보다 외향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직장을 구할 때에도


영업직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력서 작성을 마치고, 서울에 소재한 영업사원 채용공고를  찾아 부지런히 지원했다.


부산에서 구직활동을 할 땐 잘 오지도 않던 면접연락도


몇 곳에서 잡히는 희망적인 시그널이 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는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모 취업포털 사이트였다.


취업으로 인해 고향까지 떠나온 나였기에,


기업과 구직자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큰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면접관은 무려 4명, 지원자는 3명씩 보는 다대다 면접이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엔 이처럼 취업을 위해 서울 상경을 했음과


고객상담 경험, 좋았던 실적을 어필했다.


(내세울게 이것밖에 없으니.....)


다행히 면접관님들이 은은한 미소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던 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들어왔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우리의 고객은

전국의 모든 기업 인사담당자가 대상인데,

000 씨의 부산사투리가

고객 입장에서는 본사가 아닌 곳에서

연락이 온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영업활동에선 사투리가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네요.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는 면접에서


사투리로 인해 발목을 잡힐 순 없었다.


전혀 당황하지 않은 듯 표정관리를 다시 하고, 답했다.




아~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실제로 고객을 대할 때엔

말투가 달라집니다. (응??)

옥션 고객센터에서 일했을 때도

전국에서 인입되는 전화를 받았지만,

한 번도 본사가 아닌지 물어보신 분은 없었습니다!!

(실은 그런 분 계시긴 했다.)

...... 직접 보여드릴까요??



서울 표준어를 직접 시연해 보이겠다고


부산 사투리로 말하는 나.


면접관님들이 빵 터지셨고, 소리 내 웃으시며 손짓과 함께 부탁하셨다.





오(↑)늘의 쇼핑

즐(↑)거운 옥션

상담원(↑) 000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금 생각해도 참.....


내 입장에선 완벽히 구사한 서울말이었지만,


면접관님들에겐 서울말과 사투리가 섞인 문화충격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웃겼으니 됐다... 고 하기엔, 개그맨 오디션장이 아니기에


면접 결과에 대해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후 다행스럽게도 이 회사에서 합격연락을 받게 되었고,


서울살이의 첫번째 직장으로 시작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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