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고싶지 않았던 내가,목숨 한번 살려달란 부탁을 받았다

사람보다 '돈'이 가치 있는 세상은 아니길

by 양치는목동

구직자들이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대기업.


나 역시 열악한 부산의 취업현실 때문에 서울까지 상경해서


좁은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이왕이면 큰 규모의 회사인지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었다.


업무는 직접 경험해 봐야 아는 거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서.


이후 사원수가 최소 수백 명 ~ 수천 명 이상인 각 해당업계의 1위 회사에 재직하게 되었는데


물론 여러 장점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가치관과 기업윤리가 정면에서 배치되는


상황들을 경험하며 사람의 가치보다 '돈'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굴러가는 현실에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일례로 '범죄자' , '사기꾼'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업가, CEO 란 타이틀을 달면


크게 상쇄되고 실제 법적인 처벌도 미미하여 생계를 위협받게 된 수많은 피해자들의 눈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당사자와 그 가족들 외에 시간이 지나면 이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미국의 경우에는 기술 탈취 행위가 밝혀졌을 때, 엄청난 손해배상이 내려진다.


이에 반해 한국은 손해배상액이 굉장히 적고, 증거 수집도 굉장히 어렵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인수합병을 제안하거나 납품을 의뢰하면서 정보를 빼낸 후,


계약 종료하는 수법을 쓰며 추후엔 '벤치마킹', '의도적 기술 침해가 아니다.' 란 논리로 방어한다.


수년 전, 코오롱의 IT계열사는 솔컴인포컴스란 회사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했다


돌연 계약을 종료하고 자체 개발, 납품을 시작했다.


8년의 긴 법정다툼 끝에 얻어낸 배상액은 단돈 2천만 원으로 끝내 폐업하게 되었다.


(기술탈취 분쟁 판결문 (2019~23년) 평균 청구 배상액은 7억 9천만 원이지만,


인정 배상액은 1억 4천만 원으로 단 17.5% 에 해당하는 보상만 받았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 갑질]


국내 최대의 저가커피 프랜차이즈 메가커피는 기프티콘 수수료의 판매대금 11% 를


가맹점에 떠넘기고, 시세보다 비싼 장비를 본사에서만 사도록 강요했다.


심지어 기프티콘 발행사로부터 리베이트 1.1% 까지 별도로 챙겨 왔음이 밝혀졌다.






분명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나의 배를 불리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기망하는 행위는


절벽 끝 낭떠러지로 다른 사람을 밀어버리는 것과 같다.


나 역시 '가난'의 무서움을 잘 안다.


비가 오면 그릇 여러 개를 꺼내서 빗물을 받아내야 하는 집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고


서울에서는 바퀴벌레가 들끊는 옥탑방에서 지내기도


열심히 첫 직장생활 중에 통보받은 학자금 대출 상환기간 만기로 신용불량자가 될 뻔 하기도


통장 잔고 0원인 상태에 신용카드로 한 달을 버텨냈던 적도 여러 차례 있다.


돈이란 게 얼마나 사람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느껴봤기에,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게 되면 보다 마음이 쓰이고 조금이나마 도움 될 부분은 없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직장에서 번아웃을 겪고 퇴사 후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진 채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많은 빚으로 여러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리던 지인에게서 수천만 원의 큰돈을 빌려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나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말하며 거절하였지만 상대는 '도와줄 사람이 너 말고는 아무도 없다, 제발 목숨 한 번 살려달라.'는 말로 재차 부탁하였고


머리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상대가 고아 출신이며 간곡히 살려달라는 말에 그만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소정의 담보를 제공받기로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후 상황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대출 이자도 받지 못하다 잠수를 타며 바닥에 있던 나를 지하로 끌어내렸다.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나 우연한 계기로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날 속인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돈 그 자체보다,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 인한 상처가 가장 컸다.


누군가는 이럴 때 어떻게든 상대를 압박해서 조금이라도 받아내야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내가 택한 결론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기로 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기다리고, 또다시 실망하는 시간의 반복은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주었고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끌어안은 채로는 내 삶을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빌려준 돈은.... 그냥 됐어.

앞으로 다른 사람에겐

이러지 않기를 바랄게.

그리고 연락은 서로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바보 같은 선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채권자인 나는 그렇게 채무자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리고 그냥 쉼 청년으로 2년의 공백기간을 보냈지만 다시 일어서보기로, 다시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고


부지런히 지원하고 면접을 보다 서울살이의 마지막 회사이자 가장 큰 규모를 가진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