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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조짐이 보이는 면접관을 만났다.

기억에 남는 이색면접 경험

by 양치는목동

그동안 영업직을 하면서 전국 각지의 대기업, 중견, 중소기업뿐 아니라


정부기관, 시청, 군청의 인사담당자를 만나왔다.


소기업의 경우엔 대표님이 채용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경우도 많아서


첫 컨택엔 부담이 되었지만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면 이후의 진행과정은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는 장점이 있다.


별도의 인사담당자가 존재한다면 총무 업무를 겸하는 경우가 많아서


엄청나게 폭넓은 범위의 업무를 쳐내듯이 해내야 하는 고충을 안고 있었다.


장기적인 계약이 진행되며 고객사와 업무 파트너 이상의 신뢰와 친밀감이 생기게 되면


긴박하게 바뀌는 사내 동향을 미리 귀띔해주기도 하고, 어디에 터놓기 힘든 업무적인 고충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처럼 인사담당자와 소통을 주 업무로 해오기도 한 데다, 회사를 퇴사하고 몇 차례 이직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기업들의 인사담당자를 만나 면접을 보았는데 그 수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게 되니


긴장도 별로 되지 않고 말 그대로 '기업 탐방'을 다녀온다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었다.


합격여부에 따라 취업이 간절한 구직자에게 한순간 기대와 실망, 행복과 절망을 갈라버리는 면접.


그 면접장에서 겪었던 안 좋은 의미로 기억에 남아있는 일화들을 떠올려본다.





퇴사 조짐이 보이는 면접관


기존해왔던 업무와 연관이 있으면서도 보다 다양한 업무를 통한


발전 가능성이 있을 걸로 기대되는 어느 기업의 면접에 참여했다.


적절히 스스로를 포장하여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인재로 보이기 위해 집중을 하던 나완 달리,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던 면접관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저희 회사는

근속 연수가 늘어도

연봉 인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순간 당황했지만 이것은 돈이 아닌 비전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함정질문인 것인가? 란 생각을 하며 면접관의 표정을 다시 살펴보았다.


여전히 의욕 없는 표정과 흐릿한 초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어 난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역량으로 회사에 기여하는 성과를 내어서......"




성과와 상관없이

연봉 인상은 없습니다.

괜찮으실까요?



".......... 그럼 전, 힘들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가 기대되지 않는 면접을 보고 올 때의 발걸음은 항상 허탈하고,


회사 홈페이지와 관련 기사도 찾아보며 쏟은 노력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면접의 여운은 아쉬움보단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맥아리가 없어 보이던 인사담당자, 그가 솔직하게 말해준 연봉인상은 절대 없는 회사.


마치 곧 퇴사를 앞둔 사람이 애먼 구직자가 입사하고 얼마 안 있어 퇴사하는 시간낭비를


막아주기 위해, 구해주기 위해서 그러한 정보를 솔직하게 오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직원들의 급여명세표를 까는 회사


영업직은 기본급여가 있고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곳이 있는 반면,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인 곳은 기본급 없이 오로지 인센티브만 지급하는 업종들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엔 인센티브율이 보다 높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일을 하고도 월급 없이 무료봉사를 하게 되는 셈이기에


이러한 회사들은 사람을 채용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데, 나름대로 강구한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구직자를 설득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기존 근속 중인 직원들의 급여명세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본급이 없기에 초기 정착에 생계유지가 염려된다는 말을 들으면


정해진 매뉴얼이라도 있는 듯 생각보다 고연봉을 받고 있는 직원들의 급여명세표를 직접 보여주는데,


이 단계를 거치는 곳이라면 일단 불합격 걱정은 넣어두고 '무조건 합격'이라 생각하면 된다.


다만 그곳을 빨리 빠져나오려 해도 꽤나 끈질긴 설득작업이 이어지니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다.


취업사이트 메인화면의 가장 최상단 위치는 당연히 가장 값비싼 광고상품인데


종종 '창업 컨설턴트' 채용공고가 올라온다.


주로 프랜차이즈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분들 대상으로 브랜드와 매물을 상담, 계약하는 업무인데


약간의 호기심도 해소할 겸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역시 기본급은 없으며 사무실 풍경은 콜센터와 비슷하다.


인사담당자는 나를 데리고 사무실을 한 바퀴 순회하면서 벽에 붙어진 자동차 사진을 가리켰다.




이번 달 프로모션으로

1등 하는 파트에게

이 자동차가 부상으로 나가요.


기본급도 안 주는 기업이 이런 재력의 과시를 내게 어필하는 것이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대단하네요.'라고 놀란 듯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이후 면접결과는 당연히 합격으로 연락 왔고, 입사의사가 없음을 말하자


3일만 경험해 보고 결정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재차 한다.


..... 이처럼 구직난이 심한 세상이지만, 구인난이 심한 기업도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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