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Dec 11. 2023

바람맞은 날  

연락하지 않은 이유

작년 겨울 뽀글이 플리스를 껴입고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던 사람과 올해 추운 가을날 만나기로 했다. 작년에 처음 봤고, 이번이 두 번째 약속이었다. 개인적인 연락을 계속하던 사이도 아니었다. 각자의 SNS와 단톡방에서 서로의 일상을 아는 정도였다. 다만, 나이가 같고, 같은 초등학교 같은 학년 학부모이고, 성장을 추구하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단톡방에서 불현듯 우리 커피 언제 하냐는 안부 인사에 덥석 커피 타임을 제안했다. 마침 돌아오는 월요일과 화요일은 회사에 가지 않는 날이었다. 동네 누군가 만나 잠시 수다 떨고 싶었다. 그 누군가에 그녀가 떠올랐으나 먼저 물어보기에는 망설여져서 단념한 상태였다.


작년 만남 이후 나는 복직을 했다. 퇴근길에 우리 집과 담 하나 사이에 있는 그녀가 사는 아파트가 있었다. 남편의 잦은 야근에 내 퇴근길은 늘 마음이 바빴다. 어쩌다 남편이 일찍 온다고 하면 집에 곧장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 차 한잔 마시고 들어가도 되었을 텐데 그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럴 때 두어 번 정도 그녀에게 만남을 제안했다가 성사되지 않았다. 갑자기 약속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나나 그녀나 MBTI 중 P 성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절당해도 아무렇지 않겠다 싶은 생각도 있었다. 성사되기가 더 어려운 엄마 둘의 만남이니까.




동네 친구가 없었다. 이 동네는 시댁 근처라서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지방 출신인 나는 어딜 가서 살아도 타지였다. 육아휴직 중에 아이친구 엄마라도 찐하게 사귀어볼 만도 했을 텐데 그런 기회는 없었다. 워킹맘이면 노력해서라도 만들었어야 하나 싶지만, 노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맞는 사람을 못 만났다고 자평했다. 나는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원하는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니면 먼저 제안하지는 못했다.


엄마들과의 만남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그녀에게는 또 거리낌 없이 물었다. 이번에는 남편의 재택으로 월요일 1시에 가능해 보이니 아이들 봐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주기로 했다. 시간도 명확했고 아마 될 것이라고 해서 거의 약속은 성사된 것처럼 보였다.


토요일 저녁에 그런 이야기가 오갔으니 늦어도 일요일쯤 연락이 오겠지 싶었으나 답이 없었다. 일요일에는 가능하니 따로 연락이 없겠거니 여겼다. 다시 물어보자니 독촉 같았다. 혹시나 남편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설득중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조신하게 답을 기다렸다. 약속이 펑크 나더라도 집에 그냥 있으면 되니까.


약속한 월요일이 되었다. 오전에는 롯데타워 1층 런던베이글의 오픈런이 계획되어 있었다. 기다려 들어간 만큼 집에 가져갈 베이글을 고심하여 담았고, 그녀와 만나면 건넬 인기 베이글도 따로 포장했다. 내심 오전에도 연락이 없어 이 약속은 이대로 끝나겠다는 기운을 강하게 느꼈다.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장소는 미정이었다.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연락할 수 없었다. 연락이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긍정적으로. 당일 오전에는 약속이 확정된 것으로 여기고 출발할 때 연락을 줄 수도 있겠다고 기다렸다. 약속시간 한 시가 넘어갈 때는 일하느라 바빠서 잠시 까먹었을 수 있다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저녁에는 날짜를 잘못 생각했나 보다고 귀결시켰다. 어떤 이유에도 나를 만나기 싫었다를 넣지 않았으니 얼마나 자기 방어적인지.


그렇다면 나는 왜 당일에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일단 어떤 이유가 있든 약속이 잊힌 것은 사실 마음이 안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이 상하는 건 맞았다. 그 마음을 해결하고 관계 맺을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 연락을 참았다.


그녀는 이미 많은 동네 친구들이 있었고 온라인에서도 친해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까지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말이 통하고 하는 일을 응원해 줄 동네친구 한 명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인기인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녀가 약속을 잡았지만 진짜 나와 만나고 싶었는지는 모른다. 안 만나고 싶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약속을 이렇게 지나치는 것이 예의는 없지만 의사는 존중해야 했다. 진짜 단순히 잊어버린 거라면 바쁜 사정이 있었 것이다. 알람처럼 연락한들 쌓인 일을 뒤로하고 편하게 약속에 나올 수 있겠는가. 차라리 다 끝내고 잊어버린 약속이야 다시 잡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공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날 밤, 해맑게 연락이 와있었다. 오늘이 우리 만나는 날 아니었냐고. 나는 자고 있었고, 내 폰은 꺼진 상태였다. 서로 약속을 잊어버린 줄 알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연락해서 나는 약속을 잊지 않았노라고 하자, 아차 싶은 그녀가 전의 대화를 읽더니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단순히 잊어버렸구나라고 안도했고 사과를 기꺼이 받았다. 아주 쿨하게. 입장 바꿔보면 정말 미안할 일인 거고 충분히 그 마음 공감하니까.


결국, 사과받고 마음을 푸는 그 과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나의 욕구에서 비롯했다. 서운한 마음이야 진정한 사과와 커피 한잔이면 충분했다.


한마디로 친구가 되고 싶었다.














덧, 이런 생각의 전개를 하는 MBTI 가 궁금합니다. 다시 하기는 정말 귀찮거든요.

작가의 이전글 육아휴직만 5년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