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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Feb 17. 2024

감 놔라 배 놔라 해주세요.

마을버스 할머니들 감사합니다.

오전 반차를 썼다. 집들이를 가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를 우리 집에 초대하는 것을 버거워하는 나에게 다른 이의 집에 갈 기회는 많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약속이 생기는 일이 크게 줄었다. 본래 결혼 전 수첩에 빼곡히 약속들이 잡혀있는 여자였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쉽게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시간을 늘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른 이와의 만남은 언감생심이었다. 사람들도 더 이상 나에게 약속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연히 시간 없을 워킹맘이었기에.


자기 집에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같은 나잇대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대문자 E(외향형)인 화통한 그녀는 몇 명에게나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반차를 써야 하고, 우리 집에서 1 시간 하고도 더 걸리는 길을 꼭 오라고 했다. 그 마음에 내 마음이 통했다. 최근 어느 누가 나에게 꼭 만나자하는 이가 있었던가. 숱하게 지나가는 만남 제안에 '꼭'이라는 부사는 없었다.


만나고 싶은 친구에게 조차도 막상 말을 못 꺼냈다. 우리 가족들은 아내, 엄마 없이도 매우 잘 지내는 사람들이나 내 부재 시 발생할 흐트러짐이 싫어서였다. 안락의자에 늘어져 TV로 골프채널을 보는 남편과 그 옆 소파에 주르륵 앉아 아이패드에 코 박고 유튜브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빤하게 그려졌다. 그렇다면 굳이 그런 그림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간 나는 아이와 관련된 일이 아닌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입학식, 병원, 방학 등의 온통 아이를 위한 휴가였다. 휴가는 아껴도 똥이 되지 않았고, 아이들이 필요한 시간에 딱 맞춰 채워졌다. 오죽하면 올해는 나를 위한 휴가를 써보겠노라 결심했을까.


그렇게 설레는 비일상적인 길을 떠났다. 지하철을 타고, 갈아타고 또 버스를 탔다. 여유롭게 시작했던 초행길은 예상시간보다 늦어지는 탓에 조급해졌다. 각 역에 도착할 때마다 최적경로를 검색했고, 그때마다 앱마다 제각각의 답을 내놓았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반차는 알지만, 일정은 모르는  남편이 주민센터에서 볼일을 줬다. 이 여정은 절대 말 안 할 것이므로 수행과제를 해치우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주민센터가 있을까. 가는 길은 이미 글렀고, 오는 길에 들르자. 아니 왜 아침에 말하지 이제야 말해서 일정을 꼬이게 하나. 머리가 복잡해진 채로 이미 지하철을 한번 갈아탔고, 새로운 동네의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평소 타고 다니던 버스와 달랐다. 전기버스였고, 하차문을 지나 첫 줄의 네 자리에 노약자석을 알리는 노란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모두가 앉고도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으나 앞쪽도 대부분이 노약자석이라 뒤로 뒤로 걸어갔다. 어디서 내려야 할지 보다가 목적지로 가는 노선 중간에 주민센터 이름이 달린 정류장을 발견했다. 마침 다음 정류장이었다. 주민센터 바로 앞에서 내리는지 조금 걸어가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주민센터 간판을 찾으려 하차문 앞에서 사방을 둘레둘레 살폈다.


너무 요란스럽게 도리질을 해댔나. 하차문 앞의 노약자석에 앉으신 할머니가 어디를 가는지 물어봐 주셨다. 주민센터에 내리고 싶은데 정류장 바로 앞에 서는지 속사포로 물어봤다. 갑자기 버스 안이 웅성웅성해졌다. 21번을 탔어야지 잘못 탔다는 안타까운 탄식에서, 45도의 오르막길을 가리키며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는 설명까지 각각의 할머니들이 한 마디씩 거드셨다. 새삼 이 버스 안에 할머니들 뿐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는 얘기에 주민센터 갈 맘은 즉시 사라졌으나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저기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버스 안에 서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의 일에 이렇게 여러 명이 상관해 준 적이 있었나. 없었다. 단연코 없었다. 5초 동안 그 간섭들을 만끽했다. 겉으로 보기에 내 모습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껌벅거리는 어리숙한 모습이었을 것이었다.


정신 차리고 할머니들께 주민센터는 안 가고 우성아파트가 최종 목적지라고 했다. 그리로 다시 뒤로 가서 앉으려는데 할머니가 불렀다. 금방 내리는데 하차문 앞에 앉아있지 왜 뒤로 가냐는 것이었다. 머뭇머뭇했다. 거긴 노약자석이었다. 주뼛주뼛 발걸음을 멈추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괜찮다고 하시며 사람도 없으니 어서 앉으라고 하셨다. 말 한마디 안 했는데 이미 그 이유를 아셨다.


결국 노란 커버 덮인 노약자석에 앉아 언제 내려야 하는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할머니들이 일일이 알려주셨다. 한 장거장만 가면 된다고 하셨다. 앱에서는 두 정거장 남았는데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 정류장에 도착하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우성아파트 정문에서 내린다고. 틀린 것을 알려주셔도 일일이 상관해 주시는 그 간섭에 마음이 찌릿찌릿 감사했다. 10명 남짓한 버스 안에서 온통 내가 제대로 내리느냐 마느냐가 관심사였던 그 시간이 행복했다.


스스로 서고 더불어 산다던 젊은 날의 외침과 다르게 언제부터 이런 상관과 간섭이 좋아진 걸까. 어쩌다 꼭 만나자는 당부가 구속보다 반가움이 되어 가벼운 발걸음이 되었을까. 나이 들수록 사람이 안 변한다는 말 나에겐 아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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