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큰딸이 의도적으로 본인의 전화를 안 받았단다. 본인은 패밀리링크로 미술학원이 끝나고 배회하다 유치원 동생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분단위로 위치추적했단다. 아침에 나올 때 저녁에 집에 와 배고프면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서 김에 싸 먹으라고 당부했단다. 전화를 받지 않은 첫째 아이를 탓하는 중이었다.
어제와 오늘은 어머님이 여행 가셔서 첫째 아이가 유치원 여동생의 버스 하차를 맡았다. 오늘은 이 임무를 위해 수영학원도 결석했다. 미안했지만 방법이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는 미리 정해진 회식이었고, 남편은 7시에는 퇴근하겠다고 했다. 회식 장소에 들어가기 전에 통화해서 재확인을 마쳤다.
회식이 끝나고 9시가 넘어 집에 택시를 탔다. 남편과 아이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이는 휴대폰을 잘 챙기지 않으니 남편에게 다시 전화했다. 받는 순간 열이 확 올랐다. 집이 아니었다. 술이 들어간 말투였다. 아이들은 별일 없이 집에 있겠지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아무것도 확인할 길은 없었다. 애들이 집에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알지 못하는데 본인이 회식이라고? 어떻게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온갖 욕이 새어 나올 참이었지만 택시 안이라 어느 것 하나 흘릴 수 없었다.
어머님이 집에 계실 때 불편하실까 봐 생각하지 않았던 홈캠을 당장 주문했다. 어머님 계실 때는 끄시라고 할 참이었다. 아이 둘이 집에 잠깐 두고 나갈 때가 요즘 좀 생겼다.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었다. 씩씩거리며 전화해서 줄줄 이야기하는 나에게 친구가 내린 처방전이 홈캠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상이 맞지 않는 남자와 살기 위한 임시방편책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스스로 밥을 못 먹냐며 자신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하는데 꼭 어머님께 확인할 참이었다.
왜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다. 내가 회식 중인데 어떻게 전화하냐고 했다. 나는 괜찮지만 본인 기준에는 안될 일이었을까. 본인이 못 갈 상황이면 나에게 알리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물론 오래전부터 잡힌 회식 날짜와 갑자기 잡힌 저녁식사 자리 중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리는 일은 논외로 했다. 이 남자는 애들이 집에 있으니 둘의 회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알렸으면 나는 중간에 적당히 사정얘기 후 나왔을 것이다.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아이 둘이 스스로 저녁을 차려먹게 가르치지 못한 나때문가. 전화와 샤오미 시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전화를 받지 못한 첫째 아이 때문인가. 아이패드만 3시간 동안 보고 있었던 둘째 아이 때문인가. 밥만 먹고 오겠다는 놈이 노래방까지 간 것 때문인가. 10시가 다되도록 밥도 먹지 않은 애들 때문인가. 머리는 열이 나고 가슴은 아렸다.
9시 넘어 택시에서 통화하던 그는 바로 올 것처럼 했지만 12시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