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너희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며 아빠가 들고 오신 커다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어학용 테이프. 먹을게 아니라 실망하는 우리 남매에게 아빠는 당부하셨다.
“얘들아, 아빠는 영어 공부도 못하고 컸지만, 이제 세상은 영어를 잘해야 먹고살기 좋아. 삼촌 봐라, 아빠가 월급 쪼개고 쪼개서 월부로 테이프 사다 주고 공부시켰더니 큰 회사 취직해서 미국 출장도 갔다 오잖아. 이거 열심히 듣고 따라서 말해, 알았지? 아빠랑 약속!”
우리 남매에게 그 물건들은 학습용이 아니라 장난감이었다. 카세트 플레이어라는 총에 테이프라는 총알을 넣으면 소리가 나오는! 총알이 발사되는 게 아니라 소리로 발사되는 총! 플레이했다 일시 정지해봤다가, 앞으로 돌렸다 뒤로 돌렸다, 우리는 그 물건을 가지고 놀았다. 조그만 버튼을 누를 뿐인데 내 맘대로 움직여 주는 신기한 기계. 그러다 엄마의 잔소리도 듣곤 했다.
"이놈들! 아빠가 사다 주신 비싼 물건, 망가트릴 거야? 그게 장난감이야?"
장난감보다 신기한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는 신세계였다. 꼬부랑이라는 말과 쏼라라는 말이 찰떡처럼 들어맞았다. 동생이랑 얘기하곤 했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세뇌를 어려서부터 들은 탓일까? 나는 영어가 재미있었다. 수학을 공부해야 할 때도 영어 단어를 외웠고, 사전을 뒤적이며 형광펜으로 아는 단어에 색칠하는 묘미도 끝내줬다. 아주 잘하지는 못했지만, 영어는 내 평생 숙제라는 느낌이 내 머리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대학생이 돼서는 회화학원도 다니고, 리스팅 반도 수강하며 영어를 놓지 않고 지냈다. 원서로 책을 사는 허영도 부려보았다. 서너 장 넘기다 말아도 책장에 놓여있는 원서는 폼나니까. 들고만 다녀도 있어 보이니까.
대기업과 IT업체에서의 사무직은 체질에 맞지 않아 유학을 결심했다. 회사에 다니며 주말 8시간과 평일 밤 4시간 동안 진행되는 영어교사 자격증 과정을 수강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토플 점수가 필요했고, 퇴사 후 석 달간 죽어라고 공부해서 필요한 점수를 받았다. 아빠 말대로 어려서부터 조금씩 준비해 둔 덕을 본 것 같았다. 아빠 말 듣길 잘했네.